폰트 이름만 보고 톤앤매너를 아는 법

폰트 이름만 보고 톤앤매너를 아는 법

폰트 이름만 보고 톤앤매너를 아는 법

어제 클라이언트한테 메일이 왔다. “폰트는 Montserrat로 가주세요.”

본문 읽기도 전에 안다. 세련되고 싶은데 돈은 없는 스타트업. 글로벌 느낌 내고 싶은데 영어 잘 못하는 대표. “우리도 구글처럼 보이게 해주세요” 할 그림이 그려진다.

틀리지 않았다. 내용 확인하니 핀테크 스타트업. 시리즈 A 투자 받고 브랜딩하는 곳. 9년 하니까 이런 게 보인다.

Montserrat는 가난한 디자이너의 친구

구글 폰트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무료 폰트. Helvetica 못 사는 사람들의 대안. “산세리프로 깔끔하게 가고 싶어요” 하면 등장한다.

나쁜 폰트 아니다. 오히려 잘 만들어졌다. 문제는 너무 흔하다는 것.

Montserrat 쓰는 브랜드의 공통점.

  • 예산이 빡빡하다
  • 디지털 중심이다
  • 글로벌 진출을 꿈꾼다
  • 실제론 한국 시장만 본다
  • “미니멀하게” 주문한다

초반에는 나도 많이 썼다. 경력 2~3년차 때. 클라이언트한테 폰트 라이선스 설득하기 어려웠다. “폰트에 왜 돈을 내요? 그냥 쓰면 안 돼요?”

그래서 Montserrat. 무료고 괜찮으니까. 클라이언트도 만족한다. 처음엔.

6개월 지나면 연락 온다. “우리랑 비슷한 로고가 너무 많아요.”

그때 설명한다. 폰트 라이선스의 의미를. 차별화의 시작이 타이포그래피라는 것을.

요즘은 Montserrat 제안 안 한다. 클라이언트가 먼저 말하면 말린다. “다른 거 보여드릴게요. 한 번만 믿어보세요.”

대부분 설득된다. 프레젠테이션 잘하면.

Noto Sans는 안전빵

구글이 만든 범용 폰트. 모든 언어를 지원한다는 목표. 한글도 깔끔하게 나온다.

공공기관이 좋아한다. 관공서 홈페이지 10개 중 7개. “누구나 읽을 수 있어야 해요” 하면 Noto Sans.

Noto Sans 프로젝트의 특징.

  • 클라이언트가 보수적이다
  • 의사결정권자가 여러 명이다
  • “무난하게” 가 핵심 키워드다
  • 브랜딩보다 정보 전달이 우선이다
  • 논란 만들기 싫어한다

작년에 지자체 브랜딩 PT 갔었다. 담당 공무원이 첫 마디로 했다. “폰트는 Noto Sans 써주세요. 우리 기본 서체라서요.”

PT 준비한 게 물거품. Graphik 써서 컨셉 잡았는데.

그날 배웠다. 공공기관은 클라이언트 이해가 먼저라는 것. 그들의 언어로 말해야 한다는 것.

결국 Noto Sans로 갔다. 대신 웨이트 믹스로 변화를 줬다. Light와 Bold 조합. 행간 넓게 잡고.

결과는 나쁘지 않았다. 제약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도 디자인이다.

Didot은 럭셔리의 상징

세리프의 끝판왕. 가늘고 날카로운 선. 클래식하면서 모던하다.

패션 브랜드가 사랑한다. Vogue 로고가 Didot 베이스. 명품 브랜드 절반이 Didot 계열.

Didot 쓰는 클라이언트의 공통점.

  • 예산이 넉넉하다
  • 타겟이 명확하다
  • 프리미엄 포지셔닝한다
  • 디테일에 집착한다
  • “고급스럽게” 주문한다

3년 전 화장품 브랜드 작업. 대표가 Didot 지정했다. “샤넬 같은 느낌으로요.”

첫 PT에서 말했다. “Didot은 영문에선 좋은데 한글 조합이 어렵습니다.”

대표가 단호했다. “그럼 영문 로고만 가죠. 한글은 서브로.”

그게 답이었다. 영문 Didot, 한글 명조 커스텀. 조합의 밸런스가 관건.

6개월 작업했다. 한글 명조 커스텀에만 2개월. Didot 느낌 살리면서 한글 가독성 확보.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론칭 후 매출 30% 상승. 리브랜딩 성공 사례로 업계에 회자됐다.

Didot은 까다롭다. 잘못 쓰면 촌스럽다. 너무 많이 쓰면 과하다. 적재적소가 중요하다.

폰트로 보는 클라이언트 심리

9년 하면서 발견한 패턴. 폰트 선택엔 심리가 담긴다.

“Helvetica 써주세요” - 애플 따라하고 싶다 “Gothic 계열로요” - 한국적이면서 모던하게 “손글씨 느낌으로” - 친근하게 보이고 싶다 “두껍게 써주세요” - 강하게 어필하고 싶다

폰트는 브랜드의 목소리다. 말투가 곧 성격인 것처럼.

작년에 재밌는 케이스. 카페 브랜딩 의뢰. 대표가 “Futura 써주세요” 했다.

궁금했다. “왜 Futura세요?”

대표가 웃으며 말했다.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들이 다 Futura더라고요.”

솔직해서 좋았다. 그 솔직함이 브랜드 컨셉이 됐다. ‘정직한 커피’

Futura로 로고 작업. 기하학적 형태가 정직함과 맞아떨어졌다. 대표도 만족했다.

클라이언트의 폰트 선호도. 그게 곧 브랜드 방향성이다.

타이포 감각은 시간의 축적

처음엔 몰랐다. Helvetica와 Arial의 차이. 다 비슷해 보였다.

3년차쯤 보이기 시작했다. ‘e’의 각도 차이. ‘a’의 꼬리 모양. 미세한 디테일.

5년차엔 이름만 봐도 알았다. Gotham - 오바마 캠페인 느낌 Proxima Nova - 스타트업 감성 Avenir - 깔끔한데 따뜻함 Brandon Grotesque - 힙한 브랜드

지금은 자동이다. 클라이언트 첫 미팅. 업종, 타겟, 예산 들으면. 머릿속에 폰트 3개가 떠오른다.

이게 9년의 축적이다.

작년에 신입 디자이너가 물었다. “선배님은 어떻게 그렇게 빨리 폰트 고르세요?”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냥 안다. 경험이 쌓이면.

대신 이렇게 말했다. “일주일에 폰트 10개씩 공부해봐. 히스토리랑 쓰임새. 1년만 해도 달라져.”

그 친구 진짜 했다. 노션에 폰트 데이터베이스 만들고. 브랜드별로 정리하고.

6개월 지나니 눈에 띄게 성장했다. 폰트 제안이 정확해졌다. 클라이언트 설득력도 올라갔다.

타이포그래피는 언어다. 많이 읽고 많이 써야 는다.

폰트 라이선스, 이제는 설득 가능

초반엔 어려웠다. “폰트에 200만원요?” 클라이언트가 이해 못 했다.

지금은 달라졌다. 시장이 성숙했다. 클라이언트도 안다. 무료 폰트의 한계를.

요즘 프레젠테이션 방식.

  1. 무료 폰트안 1개
  2. 유료 폰트안 2개
  3. 커스텀 폰트안 1개

선택지를 주면 설득이 쉽다. 비교하면서 차이가 보인다.

작년 화장품 브랜드. 초반엔 무료 고집했다. 세 가지 안 보여주니까 바뀌었다.

“이게 우리 브랜드 같아요.” 유료 폰트안 선택. 라이선스 200만원 결제.

론칭 후 만족도 높았다. “확실히 차별화되네요.”

폰트 라이선스는 투자다. 브랜드 정체성에 대한. 그걸 이해시키는 게 디자이너 역할.

한글 폰트의 어려움

영문은 쉽다. 26자 디자인하면 끝. 한글은 11,172자.

그래서 한글 폰트가 비싸다. 작업량이 다르다.

한글 폰트 선택의 기준.

  1. 완성도 - 받침 조합 자연스러운가
  2. 웨이트 - 굵기 선택지 충분한가
  3. 확장성 - 영문 조합 매끄러운가

국산 폰트 회사들 많이 좋아졌다. 산돌, 윤디자인, 어도비. 퀄리티 높다.

작년에 식품 브랜드 작업. 한글 중심 네이밍. ‘정성가득’

영문 폰트론 느낌 안 났다. 한글 서예 베이스 폰트 찾았다. 산돌 격동고딕.

대표가 첫 반응. “이거다!”

한글의 맛이 살아났다. 브랜드 정체성도 명확해졌다.

한글 타이포그래피. 아직 갈 길 멀다. 하지만 가능성은 크다.

트렌드와 본질 사이

요즘 트렌드. 베리어블 폰트. 두께 자유자유 조절.

재밌다. 기술적으로 진보했다. 하지만 본질은 같다.

폰트는 읽히기 위한 것. 브랜드를 전달하기 위한 것. 기술은 도구일 뿐.

작년 PT에서 베리어블 폰트 제안했다. 클라이언트가 물었다. “그래서 우리한테 뭐가 좋은데요?”

답 못 했다. 멋있어 보여서 제안한 것. 브랜드 본질과 무관했다.

떨어졌다. 당연하다.

그 후로 배웠다. 트렌드는 수단이라는 것. 목적이 아니라는 것.

지금은 트렌드 따라가지 않는다. 클라이언트에게 맞는 걸 찾는다. 그게 10년 전 폰트여도 상관없다.

Garamond 500년 됐다. 여전히 아름답다. 여전히 쓰인다.

좋은 타이포그래피는 시대를 넘는다.

폰트 하나로 브랜드가 바뀐다

3년 전 리브랜딩 프로젝트. 로컬 베이커리. 15년 된 곳.

기존 로고는 Comic Sans 비슷한 거. 친근한데 촌스러웠다.

대표가 고민했다. “단골들이 익숙해하는데 바꿔도 될까요?”

제안했다. “폰트만 바꿔보시죠. 로고 형태는 유지하고.”

기존 손글씨 느낌 살리면서. 세련된 스크립트 폰트로. Playlist Script.

론칭 후 반응이 갈렸다. 단골: “뭔가 달라졌는데 여전히 우리 가게네요” 신규: “여기 새로 생긴 데예요?”

둘 다 잡았다. 정체성 유지와 쇄신.

폰트 하나의 힘. 브랜드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9년차의 폰트 선택 기준

지금 내 기준.

  1. 클라이언트 이해도 70%
  2. 타겟 분석 20%
  3. 개인 취향 10%

초반엔 반대였다. 개인 취향 70% 클라이언트 이해 30%

당연히 안 맞았다. 프로젝트마다 갈등. “이게 더 예쁜데 왜 안 돼요?”

경력 쌓이면서 바뀌었다. 클라이언트가 먼저. 그들의 브랜드니까.

하지만 10%는 남겨둔다. 내 철학을. 그게 없으면 기계다.

작년 한 프로젝트. 클라이언트 요구사항 다 맞췄다. 근데 10%를 못 넣었다.

결과물이 밋밋했다. 클라이언트도 느꼈다. “뭔가… 2% 부족한데요?”

그 2%가 디자이너의 10%다. 클라이언트는 모른다. 우리가 넣어줘야 한다.

폰트는 브랜드의 목소리

결국 타이포그래피는 커뮤니케이션이다. 브랜드가 세상에 말 거는 방식.

Didot으로 말하는 브랜드. “우리는 클래식합니다. 하지만 모던합니다.”

Futura로 말하는 브랜드. “우리는 기하학적입니다. 합리적입니다.”

Montserrat로 말하는 브랜드. “우리는 세련됩니다. 접근 가능합니다.”

폰트 이름만 들어도 톤앤매너가 보이는 이유. 그 폰트를 선택한 수많은 브랜드들의 목소리가 쌓여서.

9년간 수백 개 프로젝트. 폰트 고르는 시간이 제일 오래 걸린다. 컨셉의 시작이니까.

폰트가 정해지면 모든 게 따라온다. 컬러, 레이아웃, 톤앤매너.

거꾸로 안 된다. 디자인 다 하고 폰트 바꾸면. 전부 다시 해야 한다.

그래서 폰트가 먼저다. 항상.


내일 클라이언트 미팅. Garamond 제안할 생각이다. 500년 된 폰트가 그들의 브랜드 스토리와 맞아떨어진다. 클래식이 때론 가장 모던한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