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 Jan, 2026
클라이언트 미팅 외근이 많은 이유
클라이언트 미팅 외근이 많은 이유 오전 10시, 사무실에 30분 출근했다. 책상에 앉았다. 메일 확인했다. "오늘 오전 11시 미팅 잊지 마세요." 30분 만에 나간다. 노트북 챙기고, 무드보드 출력물 챙기고, 명함 챙기고. 사무실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길다. 이게 에이전시 디자이너의 현실이다. 동료가 웃으면서 말했다. "너 책상에 먼지 쌓이겠다." 틀린 말이 아니다.11시, 강남 클라이언트 사무실 지하철 2호선 탔다. 30분 걸린다. 클라이언트는 IT 스타트업이다. 브랜드 리뉴얼 프로젝트. 3개월째다. 회의실 들어가니 5명이 앉아있다. 대표, 마케팅 팀장, 개발자 2명, 인턴.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노트북 켰다. 프로젝트 파일 열었다. 왜 사무실에서 화상 미팅 안 하냐고? 해봤다. 안 된다. 화면으로 보면 디테일이 안 보인다. 색감이 다르게 보인다. 반응이 즉각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눈을 못 마주친다. 브랜딩은 설득이다. 설득은 대면이다. 클라이언트 표정 봐야 한다. "음..." 하는 그 미묘한 반응, 고개 살짝 갸우뚱하는 거, 팀장이 대표 눈치 보는 거. 그걸 읽어야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갈지, 아니면 더 설명할지 판단한다. "컨셉은 이렇습니다." 무드보드 펼쳤다. A3 사이즈 3장. 사진, 텍스처, 컬러 칩, 레퍼런스 이미지. 손으로 짚어가며 설명했다. "이 톤앤매너가 타겟 고객층과 맞아떨어집니다." 대표가 고개 끄덕였다. 좋다. 마케팅 팀장이 물었다. "근데 이거 경쟁사랑 차별화가 될까요?" 예상한 질문이다. "그래서 이 요소를 추가했습니다." 두 번째 보드 펼쳤다. 1시간 반 미팅했다. 피드백 5가지 받았다. 다음 주까지 수정본이다.1시, 점심은 혼자 미팅 끝나고 나왔다. 배고프다. 근처 김밥천국 들어갔다. 김치찌개 7000원. 혼자 먹는다. 노트북 켜서 피드백 정리한다. "로고 컬러 좀 더 밝게", "서브 컬러 추가 검토", "폰트 2개 더 제안". 메모하면서 먹는다. 밥알이 키보드에 떨어졌다. 털어냈다. 에이전시 디자이너는 점심시간도 애매하다. 사무실 있으면 팀원들이랑 같이 먹는다. 밖에 있으면 혼자다. 미팅 시간에 맞춰 움직이니까. 11시 미팅 끝나면 1시, 2시 미팅 있으면 12시에 먹어야 한다. 오늘은 3시에 두 번째 미팅이다. 홍대다. 1시간 반 남았다. 카페 가야겠다. 2시, 카페에서 급 수정 스타벅스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주문했다. 구석 자리 앉았다. 콘센트 있는 곳. 노트북 켰다. 일러스트 열었다. 아까 받은 피드백 중에 급한 거 하나 있다. 오후 미팅 전에 보여줘야 한다. 로고 컬러 변형 3가지. 30분 안에 만든다. 카페에서 작업하는 게 익숙하다. 사무실보다 집중 잘 될 때 있다. 주변 소음이 오히려 좋다. 너무 조용하면 딴 생각 난다. 옆 테이블에서 누가 통화한다. "네, 알겠습니다. 확인하겠습니다." 나도 저럴 거다. 1시간 뒤에. 작업 끝냈다. 저장하고, 클라우드 올렸다. 클라이언트가 폰으로도 볼 수 있게. 시간 확인했다. 2시 50분. 홍대까지 10분. 간다.3시, 홍대 공유오피스 두 번째 미팅이다. 클라이언트는 패션 브랜드. 신규 론칭 준비 중. 대표가 젊다. 31살. 나보다 어리다. 공유오피스 회의실 예약했다고 했다.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박브랜드입니다." 악수했다. 명함 받았다. 이번 미팅은 첫 미팅이다. 킥오프. 프로젝트 방향 잡는 자리다. 브랜드 네이밍부터 BI, 패키지까지 전체 작업이다. "먼저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가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질문하고 메모한다. 노트북 타이핑하면서 눈 마주친다. 대표가 말한다. 브랜드 스토리, 타겟 고객,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30분 들었다. 중간중간 질문했다. "경쟁 브랜드는 어디로 보세요?" "가격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떤 감성을 전달하고 싶으세요?" 질문이 많다. 초반 미팅은 이렇다. 듣는 게 일이다. 클라이언트가 하고 싶은 말 다 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컨셉이 나온다. 1시간 반 미팅 끝났다. 다음 주에 컨셉 PT 하기로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왔다. 4시 반이다. 사무실 갈까, 말까. 고민했다. 가도 1시간 있다가 퇴근이다. 그냥 집 간다. 왜 이렇게 밖에서 일할까 에이전시 일의 50%는 사무실 밖에서 일어난다. 과장 아니다. 실제로 그렇다. 이유가 있다. 첫째, 클라이언트가 원한다. "사무실로 와주세요." 이게 기본이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돈 내는 쪽이 갑이다. 우리가 찾아가야 한다. 그게 서비스다. 둘째, 프로젝트마다 클라이언트가 다르다. 한 달에 34개 프로젝트 돌아간다. 클라이언트가 34곳이다. 강남, 홍대, 여의도, 판교. 다 다르다. 매번 사무실로 오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움직인다. 셋째, 미팅 장소가 전략이다. 클라이언트 사무실 가면, 그쪽 분위기 파악된다. 직원들 표정, 사무실 인테리어, 회의 문화. 이게 다 브랜딩 힌트다. "아, 이 회사는 수평적이네." "여기는 보수적이구나." 그걸 보고 컨셉 조정한다. 넷째, 이동 시간이 생각 시간이다. 지하철 타고 가면서 생각한다. "아까 저 반응은 뭐였지?" "이 부분 더 강조해야겠다." 걸으면서, 타면서, 기다리면서. 계속 생각한다. 사무실에만 있으면 이런 시간 없다. 바로 다음 작업 들어간다. 다섯째, 신뢰는 얼굴로 쌓인다. 화상 미팅 10번보다, 대면 미팅 1번이 낫다. 눈 마주치고, 악수하고, 같이 커피 마시는 거. 이게 신뢰다. 클라이언트가 나를 기억한다. "그때 그 디자이너, 괜찮더라." 다음 프로젝트 때 또 찾는다. 외근의 단점 좋은 것만은 아니다. 체력 소모가 크다. 하루 3군데 돌면 녹초다. 아침 9시 출근, 10시 첫 미팅, 1시 두 번째, 4시 세 번째. 저녁 7시 되면 기진맥진이다. 이동하면서 카페인 3잔 마신다. 몸이 안 좋다. 작업 시간이 줄어든다. 미팅만 하고 오면 실제 작업은 언제 하나. 저녁에 한다. 야근이다. 아니면 주말에 한다. 미팅 준비하고, 미팅하고, 피드백 정리하고. 작업은 그다음이다. 집중이 안 된다. 사무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짧다. 큰 작업은 못 한다. 2~3시간 집중이 필요한 건 집에서 한다. 디테일 작업, 타이포 조정, 목업 작업. 이런 건 밤에. 비용이 든다. 교통비, 커피값, 점심값. 회사에서 지원해주긴 한다. 그래도 내 돈 들어갈 때 있다. 카페에서 자리 차지하려면 커피 사야 한다. 하루 2~3잔. 한 달이면 10만원 넘는다. 경계가 흐려진다. 사무실과 밖의 경계가 없다. 카페도 일터, 지하철도 일터, 클라이언트 사무실도 일터. 퇴근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집 가는 길도 일 생각한다. 쉬는 게 없다. 외근 많은 디자이너의 생존법 적응했다. 9년 하니 노하우 생긴다. 첫째, 가방이 중요하다. 노트북, 충전기, 마우스, 무드보드 출력물, 명함, 수첩. 다 들어가는 가방. 백팩 쓴다. 양손 자유로워야 한다. 무거워도 어쩔 수 없다. 이게 내 사무실이다. 둘째, 클라우드 동기화. 모든 파일 클라우드에 올린다. 집에서도, 카페에서도, 클라이언트 사무실에서도 열린다. "아, 파일 사무실에 두고 왔네." 이거 없다. 드롭박스, 구글 드라이브, 어도비 클라우드. 다 쓴다. 셋째, 미팅 전후 30분 확보. 미팅 30분 전에 도착한다. 커피 마시면서 자료 정리한다. 미팅 끝나고 30분은 피드백 정리한다. 바로 다음 미팅 가면 머릿속 뒤죽박죽이다. 넷째, 이동 시간 활용. 지하철에서 폰으로 레퍼런스 찾는다. 핀터레스트, 비핸스 스크롤한다. "이거 괜찮네." 싶으면 저장한다. 이동 시간이 영감 시간이다. 다섯째, 단골 카페 만든다. 각 지역마다 단골 카페 있다. 강남, 홍대, 여의도. 각각 2~3곳씩. 콘센트 위치 안다. 조용한 자리 안다. 와이파이 빠른 곳 안다. 낯선 카페 가면 시간 버린다. 자리 찾고, 와이파이 연결하고. 여섯째, 점심 시간 유연하게. 12시에 안 먹어도 된다. 2시에 먹어도 된다. 미팅 스케줄에 맞춘다. 배고프면 편의점 삼각김밥. 이것도 익숙하다. 일곱째, 체력 관리. 주말에 쉰다. 확실히 쉰다. 평일에 밖에서 뛰어다니면 주말은 집에 있는다. PT 주 2회 다닌다. 체력 없으면 못 버틴다. 외근이 주는 것 힘들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도시를 안다. 서울 구석구석 다닌다. 지하철 노선 외운다. "강남에서 홍대까지 40분", "여의도에서 성수까지 30분". 머릿속에 지도 있다. 동네마다 분위기 다르다. 그게 재밌다. 사람을 만난다. 사무실에만 있으면 동료만 본다. 밖에 나가면 클라이언트, 다른 업계 사람들 만난다. 스타트업 대표, 마케터, 개발자, 다른 디자이너. 네트워크 넓어진다. 인맥이 자산이다. 트렌드를 느낀다. 클라이언트 사무실 가면 느낀다. "요즘 이런 거 유행이네." "이 회사는 이렇게 일하네." 몸으로 배운다. 사무실에 앉아서 모니터만 보면 모른다. 유연해진다. 어디서든 일한다. 카페, 공유오피스, 지하철, 클라이언트 사무실. 장소 안 가린다. 노트북만 있으면 된다. 이게 경쟁력이다. 재택도 자유롭다. 어디서든 같은 퀄리티 낸다. 컨셉이 풍부해진다. 밖에서 보는 게 많다. 간판, 포스터, 사람들 옷, 카페 인테리어. 전부 레퍼런스다. "아, 이거 다음 프로젝트에 쓸 수 있겠다." 영감은 밖에 있다. 사무실 책상에 없다.에이전시 디자이너의 가방은 무겁다. 그 안에 사무실이 다 들어있으니까.
- 28 Dec, 2025
직원 20명 에이전시의 현실, 작고 민첩하다는 것의 의미
직원 20명 에이전시의 현실, 작고 민첩하다는 것의 의미 오전 10시, 대표님이 부른다 출근했다. 커피 한 잔 마시기도 전에 대표님한테 호출됐다. "브랜드, 잠깐만." 이럴 땐 십중팔구 긴급 건이다. 회의실에 들어갔더니 신규 클라이언트 PT 제안서가 책상 위에 있다. 다음 주 월요일까지. 오늘이 수요일이다. "이거 우리가 해볼 만할 것 같아?" 대표님이 묻는다. 솔직히 일정은 빡빡하다. 근데 프로젝트 자체는 재밌어 보인다. 로컬 베이커리 브랜드 리뉴얼. 작지만 철학이 있는 클라이언트. "해볼 만해요." 대답했다. 대표님이 웃는다. "그럼 맡길게. 진우랑 수민이 붙여줄게." 이게 20명 에이전시다. 의사결정이 5분이면 끝난다. 대형 에이전시였으면 이런 건 회의만 세 번은 했을 거다.전략도 하고 디자인도 하고 PT도 한다 점심 먹고 돌아와서 신규 PT 준비 시작했다. 먼저 브랜드 전략부터 짜야 한다. 큰 회사였으면 전략팀이 따로 있다. 우리는? 나다. 시니어 디자이너가 전략도 짠다. 경쟁사 분석했다. 타겟 고객 정의했다. 브랜드 포지셔닝 키워드 뽑았다. 이게 2시간. 그다음 무드보드 만들기 시작했다. 레퍼런스 이미지 50장 모았다. 색상 팔레트 정리했다. 폰트 후보 추렸다. 이게 또 2시간. 오후 4시쯤 진우가 물어본다. "형, 이거 타이포 방향 어떻게 갈까요?" 주니어 디자이너 가이드도 내가 한다. 아트디렉터 역할이다. "먼저 손으로 스케치 몇 개 해봐. 디지털 작업은 그다음." 진우가 고개 끄덕이고 돌아간다. 저녁 6시. 대표님이 또 부른다. "PT 구성 어떻게 갈 거야?" PT 스토리라인 설명했다. "좋아. 근데 예산안도 같이 넣어줘." 아, 견적서도 내가 만든다. 프로젝트 타임라인 짜고, 단계별 비용 산출하고. 이게 30분. 20명 에이전시 시니어는 멀티플레이어다. 전략가, 디자이너, 아트디렉터, 기획자, 영업. 전부 다 한다. 처음엔 힘들었다. 지금은? 이게 재밌다. 한 프로젝트를 처음부터 끝까지 내가 주도한다. 오너십이 확실하다.클라이언트가 이름을 기억한다 목요일 오전. 기존 클라이언트한테 전화 왔다. "박브랜드님, 저번에 만들어주신 명함 디자인이요. 혹시 봉투도 같은 컨셉으로 가능할까요?" 이게 작은 에이전시의 장점이다. 클라이언트가 담당자 이름을 안다. 큰 회사는? "거기 담당자 분 좀 바꿔주세요." 이렇게 시작한다. 담당자가 누군지도 모른다. 프로젝트 끝나면 관계도 끝이다. 우리는 다르다. 프로젝트 끝나고도 연락 온다. 작은 수정 요청도 우리한테 온다. "박브랜드님이 우리 브랜드 제일 잘 아시잖아요." 이런 말 들으면 기분 좋다. 내가 만든 브랜드가 성장하는 걸 계속 지켜본다. 작년에 작업한 카페 브랜드. 요즘 인스타그램 보면 잘나가고 있다. 사장님이 가끔 인스타 DM 보낸다. "덕분에 잘되고 있어요." 이런 거. 큰 에이전시 다닐 땐 몰랐다. 프로젝트가 숫자였다. 지금은 관계다. 점심 먹으러 나갔다가 작년 클라이언트 만났다. "어, 박브랜드님!" 반갑게 인사한다. 같이 밥 먹었다. 새 프로젝트 이야기 나왔다. "다음에도 박브랜드님이랑 하고 싶어요." 이게 영업이다. 따로 영업팀 없어도 프로젝트가 들어온다.빠르게 움직인다는 것 금요일 아침. 어제 만든 PT 초안 내부 리뷰했다. 대표, 나, 진우, 수민. 네 명이서 30분 동안 피드백 주고받았다. "이 슬라이드 순서 바꾸자." "이 레퍼런스는 빼자." "색상 팔레트 하나 더 추가하면 어때?" 의견 나온 거 바로 적용한다. 점심 전에 수정 끝났다. 큰 회사였으면? 피드백 정리하고, 문서화하고, 다음 회의 잡고. 일주일 걸린다. 우리는 반나절이면 끝이다. 속도가 빠른 이유는 간단하다. 의사결정 라인이 짧다. 대표님한테 바로 보고한다. 중간 관리자 없다. 팀장, 본부장, 임원. 이런 거 없다. 대표님이 OK 하면 바로 진행한다. 이게 클라이언트한테도 좋다. 수정 요청 들어오면? 당일에 반영한다. "내일 오전까지 가능할까요?" "네, 가능합니다." 실제로 가능하다. 야근하면 된다. 20명이라 누가 뭐 하는지 다 안다. 리소스 조정도 빠르다. 작년에 큰 프로젝트 하나 있었다. 대형 에이전시랑 경쟁 PT였다. 클라이언트가 우리 선택했다. 이유를 물어봤다. "빠르고 유연할 것 같아서요. 큰 회사는 시스템은 좋은데 답답해 보였어요." 맞다. 우리는 시스템이 약하다. 근데 민첩하다. 상황에 맞춰 움직인다. 매뉴얼대로 안 한다. 클라이언트 니즈에 맞춰 프로세스를 조정한다. 이게 경쟁력이다. 모든 걸 다 봐야 한다는 압박 월요일 오전. PT 최종 점검하고 있는데 수민이가 급하게 온다. "브랜드 형, 저 이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목업 파일이 안 열린다고. 프로그램 버전 문제다. 10분 동안 같이 해결했다. 디자인 작업 돌아갔다가 또 호출. 이번엔 진우다. "형, 클라이언트가 급하게 수정 요청했는데 방향을 못 잡겠어요." 같이 앉아서 30분 동안 컨셉 다시 잡았다. 점심 먹고 돌아오니 대표님한테 메시지. "브랜드, 견적서 검토 좀 해줘." 신규 프로젝트 견적이다. 공수 계산하고, 일정 체크하고, 예산 조정했다. 30분 걸렸다. 오후 3시. 드디어 내 작업 시작한다. 근데 1시간 후 또 끊긴다. 클라이언트 전화. "로고 컬러 한 톤만 더 밝게 해주실 수 있을까요?" "네, 30분 드릴게요." 수정했다. 메일 보냈다. 시니어 디자이너 일과가 이렇다. 내 작업 50%, 나머지 50%는 다른 사람 도와주기. 큰 회사였으면? 내 작업에만 집중한다. 주니어는 주니어 담당 선임이 본다. 견적은 PM이 한다. 역할이 명확하다. 20명 에이전시는? 역할이 겹친다. 시니어가 디자인도 하고, 멘토링도 하고, 기획도 하고, 견적도 본다. 처음엔 집중 안 돼서 힘들었다. 지금은 시간 분배를 배웠다. 오전에 집중 작업, 오후에 협업 및 피드백. 이렇게 루틴 만들었다. 근데 가끔 벅차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싶을 때가 있다. 디자이너인지 매니저인지 헷갈린다. 포트폴리오에 넣을 작업은 언제 하나 싶다. 모든 프로젝트가 내 작품이다 화요일. 지난주에 진행한 PT 결과 나왔다. 우리가 선정됐다. 팀 전체가 좋아한다. 작은 에이전시라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한 건 따내면 다 같이 기뻐한다. 큰 회사는? 프로젝트가 많다. 하나 따내도 별 감흥 없다. 내가 관여 안 한 프로젝트도 많다. 회사 실적이지 내 실적은 아니다. 20명 에이전시는 다르다. 모든 프로젝트를 안다. PT 준비할 때 다 같이 의견 낸다. 누가 어떤 프로젝트 하는지 다 안다. 점심 먹으면서 프로젝트 이야기한다. "너네 그거 어떻게 됐어?" "클라이언트 반응 좋았어." 이게 좋다. 소속감이 있다. 내가 회사 성장에 기여한다는 느낌. 큰 회사에선 톱니바퀴 하나였다. 여긴 엔진의 일부다. 내가 잘하면 회사가 잘된다. 내가 못하면 회사가 어렵다. 책임감이 크다. 포트폴리오도 풍부해진다. 다양한 역할 해봤으니까. 전략, 디자인, 아트디렉션, PT. 전부 경험이다. 이직할 때 유리하다. "다양한 역할 수행 가능"이 진짜가 된다. 작년에 에이전시 어워드 하나 받았다. 팀 전체가 시상식 갔다. 20명 다. 큰 회사는? 대표랑 임원 몇 명만 간다. 우리는 전부 갔다. 다 같이 축하했다. 회사 돈으로 고기 먹었다. 이런 게 작은 회사의 맛이다. 한계도 분명하다 수요일 오후. 클라이언트가 영상 브랜딩 문의했다. "모션 그래픽이랑 브랜드 필름도 같이 가능할까요?" 솔직히 애매하다. 우리 회사에 영상팀 없다. 외주 맡겨야 한다. 근데 외주 관리도 리소스다. 큰 회사는? 자체 영상팀 있다. 3D도 하고 모션도 한다. 원스톱 솔루션이다. 우리는 브랜드 디자인 특화다. 로고, 패키지, 인쇄물, 웹. 이게 메인이다. 영상은 협력사 통한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선 불편할 수 있다. 창구가 여러 개니까. 시스템도 약하다. 프로젝트 관리 툴? 노션 쓴다. 큰 회사는 전용 PM 시스템 있다. 결재 라인? 대표님한테 카톡. 큰 회사는 전자결재 시스템이다. 복지도 솔직히 약하다. 대기업처럼 복지포인트, 건강검진, 경조사비. 이런 거 없다. 있긴 한데 규모가 작다. 연봉도 대형 에이전시보다 낮다. 시니어인데 6200만원. 대형은 8000만원 이상 받는다. 안정성도 떨어진다. 프로젝트 몇 개 날아가면? 회사가 흔들린다. 큰 회사는 프로젝트 수백 개다. 몇 개 없어져도 끄떡없다. 우리는? 한 분기에 프로젝트 대여섯 개다. 하나가 크다. 작년 말에 큰 프로젝트 하나 없어졌다. 클라이언트 사정으로 보류됐다. 팀 분위기가 안 좋았다. 보너스 기대했는데 못 받았다. 이런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여기 있는 이유 목요일 저녁. 야근하고 있는데 대표님이 커피 사왔다. "다들 고생 많아." 같이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했다. 다음 분기 계획, 신규 클라이언트 전망, 회사 방향성. 큰 회사에서 이런 대화 가능한가? 불가능하다. 대표 얼굴도 모른다. 전략은 위에서 내려온다. 우리는? 전략 회의에 시니어도 참여한다. 의견 낸다. 반영된다. 이게 좋다. 내가 회사를 만들어간다는 느낌. 큰 회사는 이미 만들어진 곳에 들어간다. 시스템 따라간다. 여긴? 시스템을 같이 만든다. 프로세스 개선 제안하면 바로 적용된다. 성장도 빠르다. 입사 3년 만에 시니어 됐다. 큰 회사였으면? 5년은 걸렸을 거다. 승진 적체 심하다. 여긴 실력 있으면 빨리 올라간다. 포지션도 유동적이다. "이번 프로젝트 네가 리드 해봐." 기회가 많이 온다. 자유도도 높다. 출퇴근 자율이다. 오전 10시 출근이 원칙인데 안 지켜도 된다. 재택도 필요하면 한다. 큰 회사는? 규정 엄격하다. 30분 지각하면 반차 처리. 무엇보다 사람이 좋다. 20명이라 다 안다. 이름, 성격, 작업 스타일. 점심 먹으면서 농담한다. 주말에 같이 전시회 간다. 회식도 부담 없다. 큰 회사는? 같은 층 사람도 모른다. 지난달에 진우가 처음 프로젝트 리드 했다. 떨려서 PT 전날 밤새 연습했다. 내가 같이 리허설 봐줬다. PT 잘 끝났다. 진우가 고마워했다. "형 덕분이에요." 이런 게 보람이다. 작다는 것의 의미 금요일 오전. 이번 주 프로젝트 정리하고 있다. 베이커리 브랜드 PT 준비, 기존 클라이언트 수정 작업, 주니어 멘토링, 견적서 작성, 신규 문의 응대. 일주일 동안 다섯 가지 역할 했다. 피곤하다. 근데 지루하진 않다. 매일 다른 일 한다. 똑같은 작업 반복 안 한다. 큰 회사는? 로고만 1년 내내 그린다. 시니어인데도 단순 작업 많다. 여긴? 전략부터 실행까지 다 한다. 작은 에이전시 시니어는 제너럴리스트다. 모든 걸 조금씩 한다. 큰 회사 시니어는 스페셜리스트다. 한 분야를 깊게 판다. 어느 게 좋은가? 사람마다 다르다. 나는? 제너럴리스트가 맞다. 한 가지만 계속하면 답답하다. 다양한 일 하는 게 좋다. 그래서 여기 있다. 6년째다. 언젠가는 대형 에이전시 가볼까 생각한 적 있다. 연봉도 높고, 프로젝트 스케일도 크고, 복지도 좋고. 근데 안 갔다. 여기가 편하다. 내 속도로 일할 수 있다. 클라이언트랑 관계 쌓을 수 있다. 팀원들이랑 같이 성장한다. 작다는 건 약점이다. 동시에 강점이다. 시스템은 약하지만 민첩하다. 규모는 작지만 관계는 깊다. 안정적이진 않지만 성장은 빠르다. 이게 20명 에이전시다. 점심시간이다. 팀원들이랑 같이 밥 먹으러 나간다. "오늘 뭐 먹지?" "중식?" "좋아." 이렇게 정한다. 회의 없다. 투표 없다. 그냥 걸으면서 정한다. 이것도 작은 회사라 가능한 거다.작고 민첩하다는 건, 모든 걸 다 해야 한다는 뜻이다. 동시에 모든 걸 다 경험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 27 Dec, 2025
야근 라면과 새벽 커피, 디자이너의 밤문화
야근 라면과 새벽 커피, 디자이너의 밤문화 오후 6시, 시작되는 진짜 업무 퇴근 시간이다. 다들 가방을 챙긴다. 나는 컵라면을 꺼낸다. 내일 오전 10시 PT다. 클라이언트는 대기업 마케팅팀 임원 3명. 준비 기간은 3주였지만, 진짜 작업은 오늘부터다. "형, 먼저 갈게요." "그래, 조심히 가." 사무실이 비기 시작한다. 20명 중 남은 건 나랑 후배 디자이너 하나. 이게 우리 업계 관례다. PT 전날은 무조건 야근. 빈말 아니다. 정말로 해야 할 게 산더미다.라면 끓이는 소리 편의점 컵라면. 1200원. 야근 횟수로 나누면 한 달에 4만원쯤 쓴다. 물 붓고 3분. 이 시간이 유일한 휴식이다. 핸드폰 보면서 인스타그램 스크롤. 다른 디자이너들도 야근 중이다. "#야근스타그램 #디자이너의밤 #PT전야" 다들 똑같이 산다. 라면 먹으면서 PT 자료 다시 본다. 슬라이드 62장. 브랜드 컨셉부터 응용 시스템까지. 클라이언트는 10분 안에 결정 내릴 건데, 우리는 3주 준비했다. "핵심 메시지가 약해." 후배가 말한다. 맞다. 1페이지부터 다시 본다. 라면이 불었다. 새벽 1시의 커피 편의점 다녀왔다. 아메리카노 2개, 에너지바 3개. 오늘 다섯 번째 커피다. "형, 로고 컬러 한 톤 더 밝게 갈까요?" "아니, 지금이 맞아. 브랜드 에센스 생각해봐." 새벽 1시부터가 진짜 작업 시간이다. 낮에는 회의, 메일, 전화에 시간 다 간다. 지금부터 집중 가능하다. 슬라이드 순서 바꾼다. 스토리 라인 다시 짠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생각한다. '이 브랜드가 왜 필요한가?'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가?' 키보드 소리만 들린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창밖은 깜깜하다. 합정동 카페 불도 다 꺼졌다. 커피 식었다. 다시 마신다.왜 이렇게까지 하나 아내한테 메시지 왔다. "언제 와? 걱정된다." "3시쯤. 미안." 같은 업계라 이해한다. 그래도 미안하다. 근데 이게 우리 일이다. PT 전날 야근은 빈말이 아니라 필수 의식이다. 완성도 높이는 마지막 기회다. 낮에 작업하면 80점까지 간다. 야근하면 95점 만들 수 있다. 그 15점 차이가 PT 결과를 바꾼다. 클라이언트는 몰라도, 우리는 안다. 디테일이 다르다는 걸. "형, 케이스 스터디 슬라이드 하나 더 넣을까요?" "넣자. 설득력 올라간다." 후배도 피곤한 얼굴이다. 근데 눈은 살아있다. 좋은 작업 나올 때 느끼는 그 긴장감. 우리는 지금 브랜드 만들고 있다. 누군가의 사업이, 제품이, 가치가 세상에 나가는 거다. 대충 할 수 없다. 새벽 3시의 마지막 점검 거의 다 됐다. 슬라이드 68장으로 늘었다. 6장 추가했다. 전체 다시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 흐름 체크. 오타 확인. 이미지 해상도 점검. "형, 이거 괜찮은 것 같아요." "응, 잘 나왔다." 저장 세 번 한다. 클라우드에도 올린다. 내일 아침 혹시 모를 상황 대비. 짐 챙긴다. 노트북, 충전기, PT 인쇄물. 사무실 불 끈다. 문 잠근다. 택시 탄다. 기사님이 묻는다. "야근이세요?" "네, PT 준비요." "고생 많으시네요." 고생이다. 근데 선택했다. 이 일을, 이 업계를, 이 방식을.오전 10시, PT룸 앞 3시간 잤다. 샤워하고 양복 입었다. 커피 마시고 PT룸 도착. 9시 50분. 클라이언트 오기 전에 세팅한다. 노트북 연결, 슬라이드 테스트, 조명 확인. 후배가 물 준비했다. 자료집도 깔끔하게 놨다. "떨려요, 형." "나도. 근데 잘 만들었잖아." 문 열린다. 임원 3명 들어온다. 악수하고 인사한다. PT 시작한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제안 드릴 브랜드 컨셉은..." 68장 슬라이드가 넘어간다. 어젯밤 우리가 만든 세계가 펼쳐진다. 클라이언트가 고개 끄덕인다. "컨셉이 명확하네요." "스토리 라인이 탄탄합니다." 1시간 PT 끝났다. "좋습니다. 이 방향으로 진행하죠." 계약 성사됐다. 점심 먹으면서 후배랑 삼겹살 먹는다. 소주 한 잔씩. "형, 우리 진짜 잘했죠?" "그래, 수고했다." 피곤하다. 근데 뿌듯하다. 어젯밤 야근이 만든 결과다. 라면 먹고, 커피 마시고, 새벽까지 작업한 시간들. 그게 쌓여서 좋은 PT가 나왔다. 이게 우리 업계 문화다. 비효율적이라고? 맞다. 건강에 안 좋다고? 그것도 맞다. 근데 이렇게 안 하면 완성도가 안 나온다. 경쟁 PT에서 이길 수 없다.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수 없다. "형, 다음 PT는 언제예요?" "다음 주 금요일." 또 야근이다. 또 라면 먹는다. 이게 브랜드 디자이너의 밤문화다. 왜 계속 하는가 집에 왔다. 오후 4시. 아내는 아직 회사다. 혼자 소파에 눕는다. 피곤하다. 근데 잠 안 온다. 머릿속에 다음 프로젝트가 맴돈다. 내일 클라이언트한테 메일 온다. "계약서 검토 부탁드립니다." "다음 미팅은 언제가 좋으세요?" 그럼 또 시작이다. 컨셉 회의, 무드보드, 시안 작업, PT 준비. 그리고 또 야근한다. 컵라면 먹고, 새벽 커피 마신다. 왜 이렇게 사는가? 돈 때문? 아니다. 연봉 6200만원. 많지 않다. 명예 때문? 그것도 아니다. 일반인들은 우리 일 모른다. 그럼 뭐 때문인가? 브랜드가 세상에 나가는 순간이 좋아서다. 우리가 만든 로고가 간판에 걸리는 거 보면 짜릿하다. 클라이언트 사업이 잘 돼서 감사 메일 오면 뿌듯하다. 그게 우리를 계속 일하게 만든다. 야근하게 만들고, 라면 먹게 만들고, 커피 마시게 만든다. 밤의 의식 브랜드 디자이너의 야근은 단순 노동이 아니다. 완성도를 높이는 의식이다. 낮에는 현실적으로 일한다. 밤에는 이상적으로 만든다. 클라이언트 요구사항 맞추는 게 낮 작업이라면, 우리가 원하는 완성도 채우는 게 밤 작업이다. 컵라면은 연료다. 커피는 집중력이다. 새벽 공기는 영감을 준다. 텅 빈 사무실에서 모니터 불빛만 보고 작업할 때, 가장 순수하게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다. 전화 안 온다. 메일 안 온다. 미팅 없다. 오로지 화면 속 작업물만 있다. 이 시간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PT 성공시킨다. 브랜드 완성한다. 다음 야근 준비 편의점 갔다. 컵라면 5개 샀다. 다음 주 PT 대비해서. 계산하면서 생각했다. '이번엔 신라면으로 할까, 진라면으로 할까.' 선택했다. 신라면 3개, 진라면 2개. 다음 주 야근 메뉴 완성. 집에 오면서 하늘 봤다. 별이 보인다. 새벽 4시 하늘. 내일 또 출근한다. 클라이언트 메일 확인하고, 회의하고, 작업한다. 그리고 다시 야근한다. 라면 끓이고, 커피 마시고, PT 준비한다. 이게 우리 일이다. 브랜드 디자이너의 밤문화다.다음 주 PT도 성공할 거다. 라면 5개면 충분하다.
- 26 Dec, 2025
아이디어가 없는 월요일 아침
아이디어가 없는 월요일 아침 월요일 10시 15분 회의실에 들어갔다. 새 프로젝트 브리핑. 클라이언트는 화장품 스타트업. 대표는 30대 초반, 열정 가득. "자연주의인데 럭셔리한 느낌이요." 또 나왔다. 자연주의와 럭셔리. 양립 가능한가. 노트북을 켰다. 빈 Illustrator 파일. 커서만 깜빡인다. 머릿속도 깜빡인다. 주말에 성수동 전시회 세 곳 돌았다. 사진 127장 찍었다. 책방에서 디자인 매거진 네 권 샀다. 무드보드 폴더에 저장한 이미지만 52개. 그런데 지금 머릿속은 텅 비어있다. "박 디자이너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대표가 물었다. 나는 웃었다. "네, 재밌는 방향이네요. 레퍼런스 좀 보고 컨셉 잡아볼게요." 재밌는 방향. 거짓말이다. 아직 아무것도 안 보인다.영감 수집의 역설 주말마다 돌아다니는 이유가 있다. 월요일 아침에 빈손으로 앉아있고 싶지 않아서. 토요일 오후 2시. 성수동 갤러리 세 곳. 첫 번째는 타이포그래피 전시. 손글씨를 3D로 변환한 작업. 사진 찍었다. 두 번째는 패키지 디자인 기획전. 친환경 소재에 미니멀 그래픽. 이것도 찍었다. 세 번째는 일러스트레이터 개인전. 자연물을 기하학으로 해석. 역시 찍었다. 책방에 갔다. 연남동 작은 곳. 신간 《브랜딩의 본질》 샀다. 일본 디자이너 인터뷰집도. 독일 포스터 아카이브도. 집에 쌓인 책만 23권인데 또 샀다. 일요일은 집에서 무드보드 정리. Figma에 폴더 만들고 이미지 분류. 색감별, 무드별, 소재별. 세 시간 걸렸다. "이번 주에 쓸 수 있겠지." 그렇게 생각했다. 월요일 아침. 막상 프로젝트 시작하니까 그 무드보드가 안 보인다. 찾을 수가 없다. 아니, 찾았는데 맥락이 안 맞다. 영감 수집. 많이 하면 할수록 선택이 어려워진다. 역설이다.컨셉은 왜 안 나오나 회의 끝나고 자리 왔다. 오전 11시 30분. 프로젝트 폴더 만들었다. "자연주의_럭셔리_화장품_브랜딩_2024". 파일명부터 모순이다. 레퍼런스 검색 시작. Pinterest에 "natural luxury cosmetics" 쳤다. 결과 2만 개. 다 비슷하다. 베이지톤, 세리프 폰트, 미니멀 레이아웃. 클리셰다. Behance로 넘어갔다. "organic beauty branding" 검색. 역시 비슷. 초록색, 손글씨, 식물 일러스트. 이것도 클리셰. 주말에 본 전시 사진 다시 봤다. 타이포 전시. 3D 손글씨. 화장품 브랜딩이랑 무슨 연결고리가 있지? 모르겠다. 패키지 전시. 친환경 소재. 그건 알겠는데 럭셔리는 어디서 나오지? 일러스트 전시. 기하학 자연물. 흠... 이건 좀? 아니다. 억지로 끼워 맞추는 느낌. 컨셉이 안 나온다. 수집한 영감은 많은데 정작 내 것으로 만들 줄 모른다. 9년 차가 이래도 되나. 선배 디자이너가 말했다. "좋은 디자이너는 많이 보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버리는 사람이야." 맞는 말이다. 근데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모르겠다.점심시간의 발견 12시 30분. 점심 먹으러 나갔다. 회사 근처 김밥천국. 혼자 앉아서 참치김밥 먹었다. 핸드폰 봤다. 인스타그램 피드. 친구 디자이너가 올린 작업물. 로컬 베이커리 브랜딩. 단순한데 강렬하다. 댓글 달았다. "컨셉 뭐야?" 답장 왔다. "빵 먹는 순간의 행복. 그것만 생각했어." 빵 먹는 순간의 행복. 그것만. 그렇다. 나는 너무 많이 생각한다. 자연주의와 럭셔리를 양립시키려고. 트렌드를 반영하려고. 참신하려고. 차별화하려고. 정작 중요한 질문을 안 했다. "이 화장품을 쓰는 순간, 사람들이 뭘 느끼길 원하나?" 대표 말 다시 떠올렸다. "피부에 바르면서 자연이 느껴지는 건데, 동시에 나를 가꾸는 특별한 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자연이 느껴지는 특별한 시간. 여기다. 컨셉이 보인다. '일상 속 의식(ritual)'. 자연스러운데 신성한. 매일 하는 건데 특별한. 모순이 아니라 공존이다. 김밥 다 먹었다. 1시 10분. 회사 돌아갔다. 오후의 작업 자리에 앉았다. Illustrator 새 파일. 이번엔 커서가 움직인다. 키워드 정리. "ritual", "daily sacred", "natural ceremony". 무드보드 다시 봤다. 이번엔 보인다. 타이포 전시의 3D 손글씨. 일상적인 글씨에 차원을 더한 것. 여기서 로고 방향. 패키지 전시의 친환경 소재. 자연. 일러스트 전시의 기하학. 의식의 형식감. 연결된다. 퍼즐 맞춰지는 느낌. 레퍼런스 새로 검색. "ritual design", "sacred geometry nature". 결과가 다르다. 아까 본 것들과 다르다. 맥락이 있으니까. 스케치 시작. A4 용지 다섯 장. 로고 러프 30개. 대부분 쓰레기지만 세 개는 가능성 있다. 그중 하나는 확신 있다. 오후 4시. 팀장한테 보여줬다. "오, 방향 좋은데? 이거 더 밀어봐." 오후 6시. 컬러 팔레트 세 가지. 타이포 조합 다섯 가지. 목업에 적용. 화면 캡처. 오후 7시 30분. 초안 완성. 물론 아직 멀었다. 디테일 수정할 게 산더미. 그래도 방향은 잡혔다. 주말에 본 것들이 헛되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의 공백이 의미 있었다. 퇴근길의 생각 9시 퇴근. 지하철 탔다. 합정역까지 30분. 창밖 봤다. 반대편 플랫폼 광고판. 새 음료 브랜딩. 누가 했을까. 컨셉이 뭘까. 궁금하다. 오늘 깨달은 것. 영감 수집은 필요하다. 근데 충분하지 않다. 수집한 것을 '번역'해야 한다. 내 프로젝트의 언어로. 월요일 아침 빈 머리. 무서웠다. 9년 차인데 아직도 이렇다. 근데 생각해보니 매번 이렇다. 새 프로젝트마다 백지 상태. 그게 정상이다. 중요한 건 백지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 채우려고 서두르지 않는 것. 질문부터 제대로 하는 것. '뭘 보여줄까'가 아니라 '왜 보여줘야 하나'. '어떻게 만들까'가 아니라 '왜 만들어야 하나'. 합정역 도착. 10시. 집 가서 샤워하고 맥주 한 캔 마셨다. 아내는 야근. 혼자 소파에 앉았다. 내일은 화요일. 오늘 잡은 컨셉 정리해서 내부 리뷰. 수요일에 클라이언트 1차 PT. 또 수정 피드백 올 거다. "뭔가 임팩트가..." 벌써 들린다. 괜찮다. 방향은 맞았으니까. 나머지는 디테일이다. 그건 익숙하다. 핸드폰 봤다. 인스타그램. 어제 성수동에서 찍은 전시 사진. 올릴까 말까. 안 올렸다. 내 작업으로 소화할 때 의미 있는 거지. 사진만으로는 그냥 사진이다. 내일 또 백지로 시작할 거다. 새로운 브랜드, 새로운 질문. 괜찮다. 백지가 무서운 게 아니라, 백지를 채울 이유를 못 찾는 게 무섭다. 토요일 되면 또 전시회 갈 거다. 책방도. 사진 찍고 책 사고. 그게 내 루틴이다. 그게 나를 디자이너로 만든다.월요일 아침은 항상 비어있다. 그래서 채울 수 있다.
- 25 Dec, 2025
Behance와 Dribbble에 올리지 않는 프로젝트
결과물은 좋았다 회사에 출근했다. 월요일이다. 메일함을 열었다. 클라이언트로부터 최종 승인 메일이 와 있다. "브랜드 런칭 성공적이었습니다. 매출 전년 대비 230% 상승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6개월 걸린 프로젝트다. 컨셉 회의만 8번. 로고 시안 47개. 프레젠테이션 3차까지 갔다. 결과는 좋았다. 클라이언트도 만족했다. 시장 반응도 뜨겁다. 근데 포트폴리오에 못 올린다. NDA 때문이다.세상에 없는 작업들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열었다. 올라간 프로젝트 수: 23개. 최근 3년 작업: 47개. 반도 안 된다. Behance에 올린 프로젝트들. 다들 좋아한다. 하트 수백 개씩 받는다. 근데 정작 내가 자랑하고 싶은 건 거기 없다. 작년에 했던 스타트업 브랜딩. 시리즈A 투자 받는 데 큰 역할 했다. 올해 런칭한 식음료 브랜드. 편의점 3사 동시 입점. 지난달 끝낸 부동산 브랜드. 분양률 98%. 전부 NDA 걸려 있다. 2년 뒤에나 공개 가능하다. 어떤 건 영구 비공개다. 클라이언트 입장은 이해한다. 경쟁사가 컨셉 베끼는 거 막아야 한다. 브랜드 전략 유출되면 안 된다. 근데 디자이너 입장에선 답답하다. 내 최고의 작업들이 내 포트폴리오에 없다.면접 때마다 반복되는 상황 지난주에 헤드헌터한테 연락 왔다. 외국계 에이전시다. 연봉 30% 인상 제안. "포트폴리오 먼저 보내주세요." 보냈다. 3일 뒤 회신 왔다. "좋은데요. 그런데 최근 작업 중에 더 볼 수 있는 게 있나요?" 있다. 5개나 있다. 근데 다 못 보여준다. "죄송합니다. NDA 때문에..." 이 멘트 올해만 7번 했다. 면접 보면 항상 묻는다. "가장 자신 있는 프로젝트가 뭔가요?" 대답 못 한다. 정확히는, 말할 수 없다. 실제로 가장 잘한 프로젝트. 브랜드 전략부터 BI, 패키지, 웹사이트, 마케팅 콜라터럴까지 전부 다 했다. 8개월 걸렸다. 런칭 후 브랜드 인지도 73% 상승. 근데 설명 못 한다. "말씀드릴 수 없는 프로젝트인데..."로 시작한다. 면접관 표정이 미묘해진다. '정말로 그런 프로젝트가 있긴 한 건가?' 하는 눈빛. 억울하다.Dribbble 스타들의 비밀 Dribbble 들어갔다. 트렌딩 샷들 봤다. 예쁘다. 깔끔하다. 컨셉 명확하다. 근데 뭔가 현실감이 없다. 실제 클라이언트 작업 아닌 거 티 난다. Personal Project라고 적혀 있다. 이해한다. 보여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만드는 거다. 나도 해봤다. 가상의 커피 브랜드. 컨셉부터 패키지까지 다 만들었다. Behance에 올렸다. 반응 좋았다. 근데 찝찝하다. 실제 프로젝트의 무게가 다르다. 클라이언트 설득. 예산 조율. 제작 실현 가능성. 시장 테스트. 이런 과정 없이 만든 작업은 가볍다. Personal Project 10개보다 실제 프로젝트 1개가 더 의미 있다. 근데 그 1개를 못 보여준다. 업계 선배가 말했다. "진짜 실력자들 포트폴리오는 텅텅 비어 있어." 맞는 말이다. 큰 프로젝트 할수록 NDA 빡세다. 대기업 계열사 작업. 상장 준비 중인 회사. 해외 진출 브랜드. 전부 기밀이다. 결국 온라인에 떠도는 건 작은 프로젝트들이거나 가상 작업들이다. 실제 시장을 움직인 브랜딩은 어둠 속에 있다. 숫자로만 말할 수 있는 것들 동료 디자이너랑 술 마셨다. 비슷한 고민 있다고 했다. "그래도 성과는 말할 수 있잖아." 맞다. 프로젝트 디테일은 못 보여줘도 결과는 말할 수 있다.브랜드 인지도 65% 상승 매출 전년 대비 180% 증가 웹사이트 트래픽 320% 증가 SNS 팔로워 4만 명 증가숫자는 구체적이다. 근데 뭔가 공허하다. 디자인은 시각적이다. 컬러, 타이포그래피, 레이아웃. 눈으로 보는 거다. 숫자만 나열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면접관이 물었다. "좋은 성과네요. 근데 실제 디자인은 어떻게 생겼나요?" 보여주고 싶다. 근데 못 보여준다. 답답하다. 2년 뒤의 자랑 회사 서버에 '공개 대기' 폴더가 있다. 내 폴더에 프로젝트 17개 들어 있다. 가장 오래된 건 2022년 프로젝트다. 올해 말이면 공개 가능하다. 근데 2년 지난 작업이다. 그때 트렌드로 만들었다. 지금 보면 약간 촌스럽다. 공개해도 임팩트가 덜하다. '2년 전 작업이니까...' 하는 변명이 붙는다. 타이밍을 놓친다. 브랜드가 막 론칭했을 때가 가장 핫하다. SNS에 화제가 됐을 때 "이거 제가 만들었습니다" 하고 싶다. 근데 그때는 말 못 한다. 2년 뒤에나 말할 수 있다. 그때쯤이면 다들 관심 없다. 친구가 물었다. "요즘 뭐 하냐?" "어떤 브랜드 작업하는데... 말 못 해." "언제 볼 수 있는데?" "2025년쯤?" "..." 대화가 끝난다. 클라이언트는 몰라준다 프로젝트 끝나고 회식했다. 클라이언트 대표가 왔다. "덕분에 성공적이었습니다. 주변에 많이 알리겠습니다." 고맙다. 근데 실제로는 못 알린다.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 "을은 본 프로젝트의 실행 사실을 제3자에게 공개할 수 없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마케팅 효과 극대화하려고 비밀 유지하는 거다. 런칭 전까지 새는 거 막아야 한다. 런칭 후에는 자기네들이 자체 제작한 것처럼 포장한다. 결국 디자이너 이름은 안 나간다. 영화로 치면 감독 이름 없는 영화다. 건축으로 치면 건축가 없는 건물이다. 근데 브랜드 디자인은 원래 그렇다. 익명의 작업이다. 가끔 속상하다. 길 가다가 내가 만든 브랜드 간판 본다. 편의점에서 내가 디자인한 패키지 본다. 지하철 광고에서 내가 만든 포스터 본다. 아무도 모른다. 나만 안다. 묘한 기분이다. 업계 사람들만 아는 비밀 같은 업계 디자이너들끼리는 안다. "그거 너희가 했구나." 로고 봤을 때 느낌으로 안다. 컨셉, 타이포그래피, 컬러 시스템. 작업 스타일 보면 어느 에이전시 작업인지 추측 가능하다. 가끔 SNS에 DM 온다. "혹시 이거 작업하셨나요?" 대답 못 한다. "죄송합니다. 말씀드릴 수 없어요." 근데 서로 다 안다. 업계 모임 가면 조심스럽게 묻는다. "OO 브랜드 작업 어땠어요?" "...힘들었죠 뭐." 직접적으로 인정은 안 한다. 근데 분위기로 통한다. 일종의 암묵적 인정이다. 공개적으로는 못 올려도 업계 내에서는 평판이 쌓인다. "쟤네 에이전시 OO 프로젝트 했대." 소문으로 퍼진다. 이게 진짜 포트폴리오다. 보이지 않는 포트폴리오. 가치의 역설 아이러니하다. 공개할 수 없는 프로젝트일수록 실제로는 더 큰 프로젝트다. NDA 안 걸리는 작업들. 대부분 소규모 클라이언트다. 예산 적고, 영향력 작다. NDA 빡센 작업들. 대기업, 상장사, 글로벌 브랜드. 예산 크고, 영향력 크다. 결국 내 실력을 증명하는 프로젝트들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이력서에 쓴다. "대기업 계열사 브랜딩 (NDA)" "글로벌 브랜드 BI 개발 (NDA)" 근데 설득력 없다. 증거가 없으니까. "정말요? 어느 회사인데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 대화 끝. 가장 자랑하고 싶은 게 가장 자랑 못 하는 거다. 그래도 하는 이유 오늘 신규 프로젝트 킥오프 미팅 있었다. 대형 유통사 PB 브랜드다. 계약서 먼저 받았다. NDA 조항 3페이지. "공개 불가 기간: 프로젝트 종료일로부터 3년" 3년이다. 2027년에나 공개 가능하다. 한숨 나왔다. 또 포트폴리오에 못 올린다. 근데 하기로 했다. 이유가 있다. 첫째, 실력은 쌓인다. 보여주든 말든 내 경험이다. 큰 프로젝트 하면서 배우는 게 많다. 둘째, 레퍼런스는 쌓인다. 공개 못 해도 이력서엔 쓴다. 다음 클라이언트 설득할 때 쓴다. 셋째, 돈은 받는다. NDA 걸린 프로젝트가 페이 좋다. 비밀 유지하는 대가다. 넷째, 실제로 세상에 나간다. 내 이름은 안 나가도 작업은 나간다. 누군가는 쓴다. 누군가는 본다. 다섯째, 언젠가는 공개된다. 3년이든 5년이든 기다리면 된다. 그때 가서 정리해서 올리면 된다. 무엇보다, 이게 현실이다. 브랜드 디자이너의 숙명이다. 익명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 저녁 9시 퇴근했다. 지하철 탔다. 광고판에 내가 만든 로고 보인다. 6개월 전 프로젝트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다. "이 브랜드 요즘 핫하대." 미소 지었다. 포트폴리오엔 없다. Behance에도 없다. Dribbble에도 없다. 근데 지하철 광고판에 있다. 사람들 폰 속에 있다. 어쩌면 그걸로 충분하다. 집 도착했다. 아내가 물었다. "오늘 어땠어?" "좋은 프로젝트 시작했어." "어떤 건데?" "...말 못 해." 아내가 웃었다. "또?" "응. 또."가장 자랑스러운 일을 가장 조용히 한다. 그게 이 일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