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hance와 Dribbble에 올리지 않는 프로젝트

Behance와 Dribbble에 올리지 않는 프로젝트

결과물은 좋았다

회사에 출근했다. 월요일이다. 메일함을 열었다. 클라이언트로부터 최종 승인 메일이 와 있다.

“브랜드 런칭 성공적이었습니다. 매출 전년 대비 230% 상승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6개월 걸린 프로젝트다. 컨셉 회의만 8번. 로고 시안 47개. 프레젠테이션 3차까지 갔다. 결과는 좋았다. 클라이언트도 만족했다. 시장 반응도 뜨겁다.

근데 포트폴리오에 못 올린다. NDA 때문이다.

세상에 없는 작업들

포트폴리오 사이트를 열었다. 올라간 프로젝트 수: 23개. 최근 3년 작업: 47개.

반도 안 된다.

Behance에 올린 프로젝트들. 다들 좋아한다. 하트 수백 개씩 받는다. 근데 정작 내가 자랑하고 싶은 건 거기 없다.

작년에 했던 스타트업 브랜딩. 시리즈A 투자 받는 데 큰 역할 했다. 올해 런칭한 식음료 브랜드. 편의점 3사 동시 입점. 지난달 끝낸 부동산 브랜드. 분양률 98%.

전부 NDA 걸려 있다. 2년 뒤에나 공개 가능하다. 어떤 건 영구 비공개다.

클라이언트 입장은 이해한다. 경쟁사가 컨셉 베끼는 거 막아야 한다. 브랜드 전략 유출되면 안 된다. 근데 디자이너 입장에선 답답하다.

내 최고의 작업들이 내 포트폴리오에 없다.

면접 때마다 반복되는 상황

지난주에 헤드헌터한테 연락 왔다. 외국계 에이전시다. 연봉 30% 인상 제안.

“포트폴리오 먼저 보내주세요.”

보냈다. 3일 뒤 회신 왔다.

“좋은데요. 그런데 최근 작업 중에 더 볼 수 있는 게 있나요?”

있다. 5개나 있다. 근데 다 못 보여준다.

“죄송합니다. NDA 때문에…”

이 멘트 올해만 7번 했다.

면접 보면 항상 묻는다. “가장 자신 있는 프로젝트가 뭔가요?”

대답 못 한다. 정확히는, 말할 수 없다.

실제로 가장 잘한 프로젝트. 브랜드 전략부터 BI, 패키지, 웹사이트, 마케팅 콜라터럴까지 전부 다 했다. 8개월 걸렸다. 런칭 후 브랜드 인지도 73% 상승.

근데 설명 못 한다. “말씀드릴 수 없는 프로젝트인데…”로 시작한다.

면접관 표정이 미묘해진다. ‘정말로 그런 프로젝트가 있긴 한 건가?’ 하는 눈빛.

억울하다.

Dribbble 스타들의 비밀

Dribbble 들어갔다. 트렌딩 샷들 봤다.

예쁘다. 깔끔하다. 컨셉 명확하다. 근데 뭔가 현실감이 없다.

실제 클라이언트 작업 아닌 거 티 난다. Personal Project라고 적혀 있다.

이해한다. 보여줄 수 있는 게 없으니까 만드는 거다.

나도 해봤다. 가상의 커피 브랜드. 컨셉부터 패키지까지 다 만들었다. Behance에 올렸다. 반응 좋았다.

근데 찝찝하다.

실제 프로젝트의 무게가 다르다. 클라이언트 설득. 예산 조율. 제작 실현 가능성. 시장 테스트. 이런 과정 없이 만든 작업은 가볍다.

Personal Project 10개보다 실제 프로젝트 1개가 더 의미 있다.

근데 그 1개를 못 보여준다.

업계 선배가 말했다. “진짜 실력자들 포트폴리오는 텅텅 비어 있어.”

맞는 말이다.

큰 프로젝트 할수록 NDA 빡세다. 대기업 계열사 작업. 상장 준비 중인 회사. 해외 진출 브랜드. 전부 기밀이다.

결국 온라인에 떠도는 건 작은 프로젝트들이거나 가상 작업들이다.

실제 시장을 움직인 브랜딩은 어둠 속에 있다.

숫자로만 말할 수 있는 것들

동료 디자이너랑 술 마셨다. 비슷한 고민 있다고 했다.

“그래도 성과는 말할 수 있잖아.”

맞다. 프로젝트 디테일은 못 보여줘도 결과는 말할 수 있다.

  • 브랜드 인지도 65% 상승
  • 매출 전년 대비 180% 증가
  • 웹사이트 트래픽 320% 증가
  • SNS 팔로워 4만 명 증가

숫자는 구체적이다. 근데 뭔가 공허하다.

디자인은 시각적이다. 컬러, 타이포그래피, 레이아웃. 눈으로 보는 거다. 숫자만 나열하면 설득력이 떨어진다.

면접관이 물었다. “좋은 성과네요. 근데 실제 디자인은 어떻게 생겼나요?”

보여주고 싶다. 근데 못 보여준다.

답답하다.

2년 뒤의 자랑

회사 서버에 ‘공개 대기’ 폴더가 있다. 내 폴더에 프로젝트 17개 들어 있다.

가장 오래된 건 2022년 프로젝트다. 올해 말이면 공개 가능하다.

근데 2년 지난 작업이다. 그때 트렌드로 만들었다. 지금 보면 약간 촌스럽다.

공개해도 임팩트가 덜하다. ‘2년 전 작업이니까…’ 하는 변명이 붙는다.

타이밍을 놓친다. 브랜드가 막 론칭했을 때가 가장 핫하다. SNS에 화제가 됐을 때 “이거 제가 만들었습니다” 하고 싶다.

근데 그때는 말 못 한다. 2년 뒤에나 말할 수 있다.

그때쯤이면 다들 관심 없다.

친구가 물었다. “요즘 뭐 하냐?”

“어떤 브랜드 작업하는데… 말 못 해.”

“언제 볼 수 있는데?”

“2025년쯤?”

”…”

대화가 끝난다.

클라이언트는 몰라준다

프로젝트 끝나고 회식했다. 클라이언트 대표가 왔다.

“덕분에 성공적이었습니다. 주변에 많이 알리겠습니다.”

고맙다. 근데 실제로는 못 알린다.

계약서에 명시돼 있다. “을은 본 프로젝트의 실행 사실을 제3자에게 공개할 수 없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마케팅 효과 극대화하려고 비밀 유지하는 거다.

런칭 전까지 새는 거 막아야 한다. 런칭 후에는 자기네들이 자체 제작한 것처럼 포장한다.

결국 디자이너 이름은 안 나간다.

영화로 치면 감독 이름 없는 영화다. 건축으로 치면 건축가 없는 건물이다.

근데 브랜드 디자인은 원래 그렇다. 익명의 작업이다.

가끔 속상하다.

길 가다가 내가 만든 브랜드 간판 본다. 편의점에서 내가 디자인한 패키지 본다. 지하철 광고에서 내가 만든 포스터 본다.

아무도 모른다. 나만 안다.

묘한 기분이다.

업계 사람들만 아는 비밀

같은 업계 디자이너들끼리는 안다. “그거 너희가 했구나.”

로고 봤을 때 느낌으로 안다. 컨셉, 타이포그래피, 컬러 시스템. 작업 스타일 보면 어느 에이전시 작업인지 추측 가능하다.

가끔 SNS에 DM 온다. “혹시 이거 작업하셨나요?”

대답 못 한다. “죄송합니다. 말씀드릴 수 없어요.”

근데 서로 다 안다.

업계 모임 가면 조심스럽게 묻는다. “OO 브랜드 작업 어땠어요?”

”…힘들었죠 뭐.”

직접적으로 인정은 안 한다. 근데 분위기로 통한다.

일종의 암묵적 인정이다.

공개적으로는 못 올려도 업계 내에서는 평판이 쌓인다.

“쟤네 에이전시 OO 프로젝트 했대.” 소문으로 퍼진다.

이게 진짜 포트폴리오다. 보이지 않는 포트폴리오.

가치의 역설

아이러니하다.

공개할 수 없는 프로젝트일수록 실제로는 더 큰 프로젝트다.

NDA 안 걸리는 작업들. 대부분 소규모 클라이언트다. 예산 적고, 영향력 작다.

NDA 빡센 작업들. 대기업, 상장사, 글로벌 브랜드. 예산 크고, 영향력 크다.

결국 내 실력을 증명하는 프로젝트들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이력서에 쓴다. “대기업 계열사 브랜딩 (NDA)” “글로벌 브랜드 BI 개발 (NDA)”

근데 설득력 없다. 증거가 없으니까.

“정말요? 어느 회사인데요?”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아…”

대화 끝.

가장 자랑하고 싶은 게 가장 자랑 못 하는 거다.

그래도 하는 이유

오늘 신규 프로젝트 킥오프 미팅 있었다. 대형 유통사 PB 브랜드다.

계약서 먼저 받았다. NDA 조항 3페이지.

“공개 불가 기간: 프로젝트 종료일로부터 3년”

3년이다. 2027년에나 공개 가능하다.

한숨 나왔다. 또 포트폴리오에 못 올린다.

근데 하기로 했다.

이유가 있다.

첫째, 실력은 쌓인다. 보여주든 말든 내 경험이다. 큰 프로젝트 하면서 배우는 게 많다.

둘째, 레퍼런스는 쌓인다. 공개 못 해도 이력서엔 쓴다. 다음 클라이언트 설득할 때 쓴다.

셋째, 돈은 받는다. NDA 걸린 프로젝트가 페이 좋다. 비밀 유지하는 대가다.

넷째, 실제로 세상에 나간다. 내 이름은 안 나가도 작업은 나간다. 누군가는 쓴다. 누군가는 본다.

다섯째, 언젠가는 공개된다. 3년이든 5년이든 기다리면 된다. 그때 가서 정리해서 올리면 된다.

무엇보다, 이게 현실이다. 브랜드 디자이너의 숙명이다.

익명으로 세상을 바꾸는 일.

저녁 9시

퇴근했다. 지하철 탔다.

광고판에 내가 만든 로고 보인다. 6개월 전 프로젝트다.

사람들이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다. “이 브랜드 요즘 핫하대.”

미소 지었다.

포트폴리오엔 없다. Behance에도 없다. Dribbble에도 없다.

근데 지하철 광고판에 있다. 사람들 폰 속에 있다. 어쩌면 그걸로 충분하다.

집 도착했다. 아내가 물었다.

“오늘 어땠어?”

“좋은 프로젝트 시작했어.”

“어떤 건데?”

”…말 못 해.”

아내가 웃었다. “또?”

“응. 또.”


가장 자랑스러운 일을 가장 조용히 한다. 그게 이 일의 본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