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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이언트와 첫 미팅, 질문이 답인 이유

클라이언트와 첫 미팅, 질문이 답인 이유

클라이언트와 첫 미팅, 질문이 답인 이유 말하고 싶은 충동 첫 미팅 때마다 느낀다. 말하고 싶어 죽겠다는 걸. "저희는 이런 프로젝트 많이 했고요,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될 것 같습니다." 신입 시절엔 이렇게 시작했다. 포트폴리오 10분 동안 설명하고, 우리 작업 방식 소개하고, 예상 결과물 이야기하고. 클라이언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프로젝트는 항상 삐걱거렸다. 3차 수정 들어갈 때쯤 깨달았다. 우리가 만든 건 우리가 생각한 브랜드였다는 걸. 클라이언트가 원한 브랜드가 아니라.경력 5년차에 처음 프로젝트 리드를 맡았다. 로컬 베이커리 브랜딩. 대표님은 40대 여성. "예쁘고 감각적인 거 원해요." 그때 나는 똑똑했다고 생각했다. "요즘 트렌드는 미니멀이죠. 세리프 폰트에 크림 컬러 베이스, 빈티지 무드 가미하면..." 대표님이 끊었다.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요?" 그 질문에 답을 못 했다. 트렌드는 알았는데, 이 브랜드를 몰랐다. 듣는 기술 지금은 첫 미팅에서 거의 안 말한다. 15분 소개하고, 나머지 1시간 45분은 질문한다. "왜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경쟁사 중에 부러운 브랜드가 있나요?" "10년 후 이 브랜드가 어떤 말을 듣길 원하세요?" 처음엔 클라이언트가 당황한다. "그걸 디자이너가 제안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다. 브랜드의 본질은 클라이언트 안에 있다. 우리는 그걸 끄집어내는 사람이다.작년에 스타트업 브랜딩을 했다. 헬스케어 앱. 대표는 30대 초반 개발자 출신. "타겟이 누구예요?" "2030 여성이요." "왜 여성이에요?" "건강에 관심 많잖아요." "남성은 건강에 관심 없나요?" 대표가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사실 제 와이프가 임신하면서 건강 앱을 찾았는데, 다 너무 딱딱하더라고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타겟은 '건강에 관심 많은 여성'이 아니라 '변화하는 몸과 마주한 사람들'이었다. 임산부, 갱년기 여성, 체력이 떨어지는 중년 남성. 브랜드 네임도 바뀌었다. 'Health Plus'에서 'With Body'로. 컬러도 민트에서 따뜻한 테라코타로. 클라이언트가 말한 15분 때문에 전체 방향이 바뀌었다. 그 질문 안 했으면? 우리는 민트색 '건강한 20대 여성' 브랜드를 만들었을 거다. 3개월 후 망하는. 침묵의 가치 질문의 핵심은 침묵이다. 질문하고 기다리는 것.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3초를 못 참는다. 클라이언트가 답을 안 하면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거나, 본인이 답을 제시한다. "아마 이런 느낌을 원하시는 것 같은데..." 그 순간 대화는 끝난다. 클라이언트는 고개만 끄덕이게 된다.지난달 식품 브랜드 미팅. 3대째 이어온 전통 장류 회사. 대표는 60대 남성. "이 장이 특별한 이유가 뭔가요?" 대표님이 한참을 말 안 했다. 30초쯤 지났을까. 팀 막내가 다음 질문 넘기려고 하는데, 내가 손으로 제지했다. 50초쯤 지나서 대표님이 말했다. "아버지가 장 뜨는 날이면, 새벽 4시에 일어나셨어요. 그때 장맛이 가장 좋다고. 근데 과학적으론 말이 안 되죠. 온도는 똑같으니까. 그런데 저도 모르게 새벽에 장 뜨게 되더라고요." 그 이야기가 브랜드 컨셉이 됐다. '새벽의 정성'. 로고는 해 뜨기 전 하늘색. 패키지에는 시계를 넣었다. 04:00. 30초를 못 참았으면? "전통의 맛입니다" 같은 뻔한 카피였을 거다. 클라이언트는 답을 안다. 다만 정리가 안 되어 있을 뿐. 우리가 해줄 건 시간이다. 생각할 시간. 진짜 질문과 가짜 질문 모든 질문이 다 좋은 건 아니다. 가짜 질문이 있다. "어떤 느낌을 원하세요?" "선호하는 컬러가 있나요?" "레퍼런스 보내주실 수 있나요?" 이건 질문이 아니다. 답변 수집이다. 체크리스트 채우기. 진짜 질문은 '왜'를 묻는다. "왜 이 사업을 시작했어요?" "왜 지금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왜 저희를 선택했어요?" 작년에 경쟁 PT가 있었다. 패션 스타트업. 우리 포함 3개 에이전시. 다른 팀들은 30분 동안 포트폴리오 보여주고, 예상 결과물 프레젠테이션 했다. 우리는 20분 소개하고, 40분 질문했다. "기존 브랜드들이 놓치고 있는 게 뭐라고 보세요?" "당신이 만들고 싶은 건 브랜드인가요, 커뮤니티인가요?" "돈이 무한대면 어떤 브랜드를 만들고 싶으세요?" PT 끝나고 일주일 뒤. 우리가 선택됐다. 피드백은 이랬다. "솔직히 결과물은 다른 팀이 더 그럴싸했어요. 근데 박브랜드 팀은 우리 브랜드를 이해하려고 했어요.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격은 우리가 제일 비쌌다. 그래도 선택받았다. 질문 때문에. 답을 찾는 과정 질문은 방향을 잡는다. 그 방향에서 우리는 답을 만든다. 클라이언트가 "MZ세대를 타겟으로 하고 싶다"고 하면, 대부분 디자이너는 인스타그램 감성으로 간다. 파스텔톤, 산세리프, 미니멀. 나는 다시 묻는다. "MZ세대의 뭘 사로잡고 싶어요?" "그들이 지갑 여는 순간이 언제라고 보세요?" "당신이 MZ라면 이 브랜드를 쓸 이유가 뭐예요?" 질문을 파고들면 '진짜 원하는 것'이 나온다. MZ가 아니라 '가치소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거나, '나만의 취향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그럼 디자인이 달라진다. 파스텔이 아니라 명확한 메시지. 미니멀이 아니라 스토리. 올해 초 화장품 브랜드를 했다. 대표는 "클린뷰티"를 원했다. 시장조사 해보니 클린뷰티 브랜드가 이미 87개. "왜 클린뷰티예요?" "요즘 트렌드잖아요." "그럼 88번째 클린뷰티가 되고 싶으신 거예요?" 대표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왜 화장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 생각은?" 대표는 아토피가 있었다. 20대 내내 화장을 못 했다. 30대에 피부과 치료 받고 나아졌는데, 화장품이 너무 무서웠다고. "또 뭐 바르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거기서 컨셉이 나왔다. '무섭지 않은 화장품'. 클린뷰티가 아니라 'Gentle Beauty'. 성분 나열이 아니라, 사용 후기 중심. "3일째 써도 괜찮았어요"라는 리얼 보이스. 패키지도 투명하게 해서 내용물이 보이게. "숨긴 게 없다"는 메시지. 론칭 3개월 만에 재구매율 68%. 클린뷰티로 갔으면 그냥 묻혔을 거다. 클라이언트를 교육하는 질문 좋은 질문은 클라이언트를 바꾼다. 브랜드를 다르게 보게 만든다. "경쟁사가 누구예요?" 라고 물으면 대부분 같은 업종을 말한다. 카페면 카페, 의류면 의류. 나는 다르게 묻는다. "고객이 당신한테 쓸 돈을, 어디에 쓸 수도 있을까요?" 카페라면? 편의점 커피, 집에서 내리는 커피, 아예 안 마시고 주스. 진짜 경쟁자는 같은 카페가 아니다. '그 시간을 보내는 다른 방법들'이다. 이 질문 하나로 브랜드 전략이 바뀐다. 커피 맛 경쟁이 아니라,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공간이 되는 것. 인테리어가 중요해지고, 콘셉트가 명확해진다. 작년에 북카페 브랜딩 했다. 대표는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을 원했다. 근데 물어봤다. "사람들이 여기서 뭘 얻어가길 바라요?" "...책을 읽는 거 아닌가요?" "집에서도 읽을 수 있는데, 왜 여기 와야 해요?" 대표가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혼자만의 시간이요. 집에선 계속 뭔가 해야 하잖아요. 여기선 그냥 멍때려도 되는." 컨셉이 나왔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곳'. 메뉴는 최소화. 주문도 키오스크로. 직원이 말 걸지 않음. 심지어 브랜드 네임도 '...'(점 세 개). 말줄임표. 오픈하고 SNS 난리 났다. "여기 진짜 아무도 안 건드려줌." 그게 차별화였다. 질문이 없었으면? 그냥 "조용한 북카페" 100호점 됐을 거다. 질문이 만드는 신뢰 첫 미팅에서 말 많이 하는 디자이너는 불안해 보인다. 실력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느낌. 질문하는 디자이너는 여유로워 보인다. "나는 당신의 브랜드를 이해할 시간이 있다"는 메시지. 클라이언트는 그걸 느낀다. 누가 진짜 파트너인지. 지난 6월에 미팅 하나가 기억난다. 리빙 브랜드. 창업자는 20대 후반 여성. 첫 사업이라 긴장한 게 보였다. 30분 동안 우리 포트폴리오 보여줬는데, 계속 "네네" 하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서 멈췄다. "혹시 궁금한 거 있어요?" "아... 아니요. 다 좋은 것 같아요." "진짜요? 불안한 거 없어요?" 그때 대표가 처음 제대로 말했다. "솔직히... 제 브랜드가 될까 걱정이에요. 포트폴리오 보니까 다 세련된데, 제 브랜드는 좀 투박하거든요." 거기서부터 진짜 대화가 시작됐다. 세련됨이 아니라 진정성. 투박함이 아니라 손맛. 그런 이야기들. 결국 그 대표는 우리를 선택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다른 에이전시는 "트렌디하게 만들어드릴게요"라고 했대. 우리는 "당신의 브랜드를 찾아드릴게요"라고 했고. 프로젝트는 5개월 걸렸다. 중간에 방향 회의만 여섯 번. 힘들었다. 근데 론칭하고 대표가 문자 보냈다. "이게 제 브랜드 맞아요. 고마워요." 그게 우리 일이다. 클라이언트 안에 있는 브랜드를 끄집어내는 것. 질문 없이는 불가능하다. 말하지 않는 용기 요즘 후배들한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미팅에서 말 좀 줄여." 다들 잘하고 싶어서 말을 많이 한다. 레퍼런스 준비하고, 시장조사하고, 트렌드 분석하고. 그걸 다 보여주고 싶어한다. 근데 첫 미팅은 시험이 아니다. 관계의 시작이다. 관계는 듣기에서 시작한다. "당신이 중요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거. 말이 아니라 태도로. 이번 달 초 미팅에서도 느꼈다. 식음료 프랜차이즈 브랜딩. 팀 막내가 30분짜리 PT 준비해왔다. 시장 분석, 경쟁사 리서치, 컨셉 방향 3가지. 발표 5분 만에 끊었다. "죄송한데, 질문부터 해도 될까요?" 막내는 당황했지만, 클라이언트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관심 생긴 거다. "왜 프랜차이즈를 하려고 해요?" "어떤 점주를 만나고 싶어요?" "10호점이 아니라 100호점을 상상하면, 뭐가 보여요?" 1시간 동안 대화했다. 준비한 PT는 10분도 안 썼다. 근데 미팅 끝나고 클라이언트가 말했다. "다음 미팅 때 계약서 가져올게요." 그 자리에서 결정났다. 막내는 나중에 물었다. "준비한 거 왜 안 썼어요?" 답했다. "필요 없었으니까. 클라이언트가 이미 다 말했잖아." 준비는 중요하다. 근데 준비를 다 보여주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준비는 질문을 위한 거다.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기 위해. 9년 차에 깨달은 것 경력이 쌓일수록 말이 줄어든다. 신기하게. 신입 때는 1시간 미팅에서 40분을 내가 말했다. 5년 차엔 반반. 지금은 15분 말하고 45분 듣는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실력이 생겨서 그렇다. 브랜드의 본질이 어디 있는지 아니까. 디자이너 머릿속이 아니라, 클라이언트 안에. 우리는 아티스트가 아니다. 브랜드 닥터에 가깝다. 환자 말 안 듣고 처방하는 의사는 돌팔이다. 우리도 마찬가지. 작년에 대형 프로젝트 하나를 놓쳤다. 경쟁 PT에서 떨어졌다. 이유를 물어봤더니 "너무 질문만 하셔서..." 라고 했다. 처음엔 억울했다. 제대로 하려고 했는데. 근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해됐다. 그 클라이언트는 질문을 원한 게 아니었다. 화려한 결과물을 원했던 거다. 그런 클라이언트랑은 안 맞는다. 3개월 후 들어보니 그 프로젝트 수정만 15차 들어갔다고. 결국 처음 제안한 거랑 완전히 달라졌대. 우리 방식이 맞는 클라이언트가 있다. 브랜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 그들은 질문을 좋아한다. 같이 고민하고 싶어하니까. 프로젝트 선택도 그렇게 한다. 첫 미팅에서 우리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는 클라이언트. 그런 분들하고만 일한다. 그래야 좋은 브랜드가 나온다.첫 미팅은 시험이 아니라 대화다. 말이 아니라 질문으로. 거기서 브랜드가 시작된다. 클라이언트 안에 이미 답이 있다. 우리는 그걸 듣기만 하면 된다. 말하고 싶은 걸 참는 게 디자이너의 진짜 실력이다.

PT 슬라이드, 다섯 번째 수정본이 제일 좋은 이유

PT 슬라이드, 다섯 번째 수정본이 제일 좋은 이유

PT 슬라이드, 다섯 번째 수정본이 제일 좋은 이유 월요일 오후, 첫 번째 버전 클라이언트 PT가 목요일이다. 오늘이 월요일. 시간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첫 슬라이드를 연다. 표지부터 만든다. 프로젝트명, 회사 로고, 날짜. 깔끔하다. 두 번째 슬라이드. 브랜드 컨셉을 설명한다. 텍스트 여섯 줄. 이미지 두 개.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한 시간 만에 15장을 만들었다. 빠르다. 효율적이다. 저장한다. "브랜드제안_v1.pptx"화요일 아침, 두 번째 버전 출근해서 파일을 연다. 어제 만든 슬라이드. 뭔가 이상하다. 텍스트가 너무 많다. 이미지가 작다. 여백이 답답하다. 컨셉 슬라이드를 다시 만든다. 텍스트를 세 줄로 줄인다. 이미지를 키운다. 여백을 넓힌다. 레퍼런스 슬라이드도 수정한다. 4개 배치를 2개로 바꾼다. 크게 보여주는 게 낫다. 두 시간 걸렸다. "브랜드제안_v2.pptx" 리드 디자이너한테 보여준다. "괜찮은데, 흐름이 좀..." 알았다. 화요일 저녁, 세 번째 버전 흐름을 다시 본다. 컨셉 → 레퍼런스 → 방향성 → 시안 이 순서가 맞나? 레퍼런스가 먼저 와야 하나? 아니다. 컨셉 설명 전에 문제 정의가 필요하다. 클라이언트가 왜 우리를 찾았는지. 현재 브랜드의 문제점이 뭔지. 슬라이드 순서를 바꾼다. 문제 정의 → 시장 분석 → 컨셉 도출 → 레퍼런스 → 방향성 → 시안 논리적이다. 설득력 있다. 전체 슬라이드가 22장이 됐다. 길다. 하지만 필요한 내용이다. 저장한다. "브랜드제안_v3.pptx" 퇴근한다. 9시 반.수요일 오전, 네 번째 버전 집에서 파일을 다시 열었다. 잠자기 전에. 한 번만 보자고 생각했는데. 22장이 너무 길다. 클라이언트는 15분만 집중한다. 경험상 안다. 슬라이드를 줄인다. 합칠 수 있는 건 합친다. 시장 분석 3장을 1장으로. 레퍼런스 4장을 2장으로. 결론은 16장. 적당하다. 그런데 컬러가 마음에 안 든다. 포인트 컬러를 바꾼다. 파란색에서 주황색으로. 브랜드 컨셉이랑 더 맞다. 새벽 2시. "브랜드제안_v4.pptx" 잔다. 출근해서 리드한테 다시 보여준다. "오, 이제 좀 되는데?" 좀? "근데 타이포가 좀 약한 것 같은데." 알았다.수요일 밤, 다섯 번째 버전 타이포를 본다. 본문은 Noto Sans. 무난하다. 너무 무난하다. 제목 폰트를 바꾼다. Pretendard에서 Spoqa Han Sans로. 좀 더 단단하다. 영문 폰트도 바꾼다. Helvetica에서 Futura로. 브랜드 톤이랑 맞다. 자간을 조정한다. -20에서 -10으로. 가독성이 좋아졌다. 슬라이드를 하나씩 다시 본다. 텍스트 정렬을 맞춘다. 이미지 사이즈를 통일한다. 여백을 일정하게. 그리드가 보인다. 리듬이 생긴다. 흐름이 매끄럽다. 이제 됐다. 완성이다. 저장한다. "브랜드제안_v5_final.pptx" 시간을 본다. 밤 11시. 왜 다섯 번째인가 첫 번째는 아이디어다. 머릿속에 있는 걸 일단 꺼낸다. 정리 안 된 생각들. 두 번째는 정리다. 불필요한 걸 지운다. 핵심만 남긴다. 세 번째는 구조다. 순서를 찾는다. 논리를 만든다. 네 번째는 밸런스다. 양을 조절한다. 컬러를 맞춘다. 다섯 번째는 완성도다. 디테일을 잡는다. 리듬을 만든다. PT 슬라이드는 디자인이다. 로고 작업이랑 똑같다. 한 번에 나오는 게 없다. 1차 시안도 5번은 수정한다. PT 슬라이드도 마찬가지다. 목요일 오후, PT 현장 회의실에 들어간다. 클라이언트 세 명. 우리 팀 둘. 빔을 켠다. 슬라이드가 뜬다. 표지부터 다르다. 타이포가 단단하다. 컬러가 명확하다. 두 번째 슬라이드. 문제 정의. 클라이언트가 고개를 끄덕인다. 세 번째, 네 번째. 시장 분석, 컨셉 도출. 흐름이 자연스럽다. 여덟 번째 슬라이드쯤. 질문이 나온다. "이 레퍼런스는 어떤 의도인가요?" 준비했다. 다음 슬라이드에 설명이 있다. 클릭한다. "아, 이해했습니다." PT는 25분 걸렸다. 계획보다 10분 길다. 하지만 집중했다. 마지막 슬라이드. 감사 인사. 박수는 없다. 원래 없다. "검토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나간다. 금요일 오전, 결과 메일이 왔다. "제안 방향으로 진행하고 싶습니다." 됐다. 리드한테 말한다. "PT 붙었대." "그래? 슬라이드 잘 만들었나보네." "응." 사실 중요한 건 슬라이드가 아니다. 컨셉이다. 전략이다. 하지만 슬라이드가 중요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보여주느냐. v1으로 PT 했으면? 아마 안 됐을 거다. 산만했으니까. v3으로 했으면? 너무 길어서 집중력이 떨어졌을 거다. v4는? 타이포가 약해서. 완성도가 낮아 보였을 거다. v5가 맞다. 내용, 구조, 밸런스, 디테일. 다 갖췄다. 다섯 번이 적당한 이유 세 번은 부족하다. 구조까지만 잡힌다. 디테일이 없다. 일곱 번은 과하다. 완벽주의가 된다. 시간만 쓴다. 다섯 번이 딱이다. 경험상 안다. 로고 시안도 그렇다. 초안 → 수정1 → 수정2 → 수정3 → 완성. 대부분 이 사이클이다. 포트폴리오 사이트도. 레이아웃 잡고. 컨텐츠 넣고. 타이포 조정하고. 컬러 맞추고. 디테일 잡으면 끝. 다섯 번. 처음엔 빠르게. 중간엔 논리적으로. 마지막엔 섬세하게. 수정의 본질 수정은 실패가 아니다. 과정이다. v1이 나쁜 게 아니다. v5로 가는 첫 단계다. 클라이언트도 마찬가지다. "이게 5차 수정인데요."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최적의 안을 찾아가는 중입니다." 이렇게 말한다. 사실은 똑같은 말이다. 하지만 느낌이 다르다. 수정은 개선이다. 더 좋은 걸 만드는 과정. 디자인은 한 번에 나오지 않는다. 브랜딩도. PT 슬라이드도. 레이어를 쌓는다. 아이디어 → 정리 → 구조 → 밸런스 → 디테일. 각 단계가 필요하다. 건너뛸 수 없다. v1에서 v5로 바로 가려고 하면. 놓치는 게 생긴다. 구조가 약하거나. 밸런스가 안 맞거나. 차근차근. 한 단계씩. 그게 다섯 번인 이유다. 월요일 아침, 새 프로젝트 또 PT가 잡혔다. 다음 주 수요일. 슬라이드를 만든다. 첫 번째 버전. 빠르게 만든다. 일단 내용을 채운다. 저장한다. "신규제안_v1.pptx" 내일 다시 본다. v2를 만든다. 수요일쯤 v5가 나올 거다. 알고 있다. 그게 프로세스니까.다섯 번째가 항상 좋은 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다. 그게 적당한 거리다.

뭔가 임팩트가 부족해요 - 클라이언트의 불명확한 피드백과 싸우기

뭔가 임팩트가 부족해요 - 클라이언트의 불명확한 피드백과 싸우기

뭔가 임팩트가 부족해요 화요일 오후 3시 회의실에 들어갔다. 클라이언트 세 명. 우리 팀 네 명. 2주 작업한 브랜드 아이덴티티 중간 발표. "컨셉은 '도시 속 자연'입니다. 유기농 카페 브랜드의 본질을 담았어요." 무드보드를 넘긴다. 로고 시안 세 개. 컬러 팔레트. 타이포그래피 시스템. 어플리케이션 목업까지. 준비는 완벽했다.대표님이 팔짱을 꼈다. 30초 침묵. 아 이거 시작이다. "좋은데요. 근데 뭔가... 임팩트가 부족한 것 같아요." 임팩트. 이 단어가 나오면 회의는 최소 1시간 더 간다. 경험상. "어떤 부분에서 그렇게 느끼셨나요?" "음... 전체적으로요? 뭔가 확 와닿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뭐가 확인데. 마케팅 팀장이 거든다. "저도 비슷하게 느꼈어요. 임팩트가 약해요." 두 명. 경영지원실장까지. "네, 저도 그 느낌 알 것 같아요." 세 명. 만장일치. 임팩트 부족. 임팩트의 정의 회사로 돌아왔다. 팀장이 물었다. "임팩트가 뭐래?" "모르겠어요. 물어봤는데 전체적으로래요." "전체적으로가 제일 답답하지." 맞다. 10년 가까이 이 일 했다. '임팩트 부족'이라는 피드백을 최소 50번은 들었다. 그런데 매번 의미가 다르다. 어떤 클라이언트의 '임팩트'는 '더 화려하게'였다. 어떤 클라이언트의 '임팩트'는 '더 심플하게'였다. 또 어떤 클라이언트는 '임팩트'가 '고급스럽게'를 뜻했다. 같은 단어. 다른 뜻. 디자이너는 번역가가 되어야 한다. 클라이언트의 감정을 디자인 언어로 바꾸는.수요일 오전, 역질문의 기술 다시 미팅을 잡았다. 이번엔 내가 준비했다. "'임팩트'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볼까요?" 화이트보드를 꺼냈다. 질문 리스트. "지금 느끼시는 건 1) 시각적으로 약해서? 2) 메시지가 불명확해서? 3) 경쟁사 대비 차별성이 없어서?" 대표님이 생각했다. "음... 2번? 메시지가 좀." "메시지요. '도시 속 자연'이라는 컨셉이 잘 안 보인다는 말씀이신가요?" "아니 컨셉은 좋아요. 근데 이게 우리 브랜드인지 잘 모르겠어요." 시작이다. 진짜 이슈가 나온다. "브랜드 정체성이 약하다는 거군요. 그럼 '자연'보다 '우리만의 자연'을 더 강조해야겠네요." "맞아요, 그거!" 임팩트 = 브랜드 고유성. 하나 잡았다. 마케팅 팀장은 달랐다. "저는 색이요. 너무 차분해요. 저희가 MZ 타겟인데." "MZ요? 브리프에는 3040 직장인이라고." "아 그건 1차 타겟이고요, 확장은 MZ로 가려고요." 처음 듣는 얘기다. "그럼 타겟을 두 개로 봐야 하는 거네요. 지금 컬러는 3040 직장인용이에요. MZ까지 고려하려면 톤앤매너를 조정해야 해요." "그렇게 해주세요!" 임팩트 = 타겟 확장성. 둘 잡았다. 경영지원실장의 차례. "전 솔직히 로고가 좀... 경쟁사 A랑 비슷해 보여요." "어떤 점에서요?" "둘 다 녹색에 나뭇잎 모티브잖아요." "유기농 카페 브랜드는 90%가 녹색에 나뭇잎이에요. 대신 저희는 서체와 심볼 조합으로 차별화했습니다." "그래도 임팩트가..." "경쟁사와 완전히 다른 색을 원하시나요? 예를 들어 블랙 베이스?" "오, 그거 좋을 것 같은데요?" 임팩트 = 예상 밖의 선택. 셋 잡았다.임팩트의 실체 '임팩트가 부족하다'는 피드백은 거의 항상 불명확하다. 그런데 그게 클라이언트 잘못은 아니다. 그들은 디자이너가 아니다. 자기 감정을 디자인 용어로 설명할 수 없다. 그냥 '뭔가 아니다'라는 느낌만 있다. 우리 일은 그 느낌을 해독하는 거다. 9년 하면서 발견한 것들: 임팩트 부족 = 브랜드 정체성 미약 (40%) "이게 우리 브랜드인지 모르겠어요" → 고유성 강화 필요. 임팩트 부족 = 타겟 불일치 (30%) "우리 고객이 좋아할까요?" → 타겟 재정의 필요. 임팩트 부족 = 경쟁사 차별화 부족 (20%) "다른 브랜드랑 비슷해요" → 시장 분석 재검토. 임팩트 부족 = 그냥 마음에 안 듦 (10%) "뭔가 아니에요" → 이건 솔직히 답이 없다. 마지막 10%가 제일 힘들다. 감으로 가는 거라서. 수요일 오후, 역제안 질문으로 이슈를 세 개 잡았다. 이제 해결책이다. "정리하면, 세 가지 방향이 나왔어요." 화이트보드에 썼다. 방향 1: 브랜드 고유성 강화'도시 속 자연'에서 '당신만의 정원'으로 컨셉 조정 개인화 메시지 강화 타이포그래피를 더 독특하게방향 2: MZ 타겟 반영컬러 팔레트에 비비드 포인트 추가 SNS 중심 어플리케이션 개발 인포그래픽 스타일 간소화방향 3: 블랙 베이스 실험유기농 = 녹색 공식 깨기 프리미엄 도시 카페 이미지 경쟁사 대비 극단적 차별화"세 방향 다 해보시겠어요? 아니면 하나 선택하시겠어요?" 대표님이 웃었다. "다 좋은데, 일정은요?" "방향 하나면 1주. 세 개 다 하면 2주 반." "예산은요?" "방향 하나는 현재 계약 내. 세 개는 추가 견적 필요해요."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다. 일정과 예산 없이 '다 해보자'는 건 지옥이다. "2번으로 가죠. MZ 반영. 확장 가능성이 제일 크니까." 결정 났다. 목요일, 재작업 방향이 명확해지니까 작업이 빠르다. 컬러 팔레트에 코랄 핑크 추가. 세이지 그린 채도 올림. 포인트 옐로우 신설. 타이포그래피는 산세리프 비중 높임. 가독성보다 임팩트. MZ는 직관이다. 인스타그램 템플릿 10종 만듦. 스토리 전용 심볼 단순화. GIF 움직임 추가. 밤 11시까지 작업했다. 아내한테 미안하다고 문자 보냈다. "내일 일찍 들어갈게." 답장: "나도 야근. ㅋㅋ 내일 브런치?" 업계 부부의 장점. 서로 이해한다. 금요일 오후, 재발표 같은 회의실. 같은 사람들. "지난번 피드백 반영했습니다. MZ 타겟 확장 중심으로." 새 무드보드를 펼쳤다. 컬러가 확 달라졌다. 밝고 경쾌하다. 대표님 눈빛이 달라졌다. "오, 이거 좋은데요?" 마케팅 팀장이 폰으로 사진 찍는다. "인스타에 잘 먹히겠어요!" 경영지원실장도 고개를 끄덕인다. "임팩트 확실히 살았네요." 임팩트. 같은 단어인데 이번엔 칭찬이다. 임팩트의 진실 '임팩트'는 디자인 용어가 아니다. 감정 용어다. 클라이언트가 '임팩트 부족'이라고 할 때, 실제로는:"내 기대와 달라요" "우리 브랜드 같지 않아요" "경쟁사보다 약해 보여요" "타겟이 좋아할지 불안해요" "뭔가 아닌 것 같아요"이 중 하나다. 우리 일은 그 '뭔가'를 찾는 거다. 질문으로. 대화로. 때로는 역제안으로. 9년 차가 되어서야 안 건, 좋은 디자인보다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이 먼저라는 것. 클라이언트의 불명확한 피드백은 적이 아니다. 단서다. 그 단서를 풀어내는 게 시니어의 역할이다. 화려한 포트폴리오보다 중요한 건, 클라이언트의 말을 제대로 듣는 귀다. 그리고 그들이 진짜 원하는 걸 디자인으로 번역하는 능력. 임팩트는 클라이언트의 머릿속에 있다. 우리는 그걸 꺼내서 화면에 옮길 뿐이다. 월요일 아침 메일이 왔다. "최종안 승인합니다. 다음 주 목요일 최종 PT 일정 잡아주세요." 2주 만에 중간 발표 통과. 나쁘지 않다. 팀 단톡방에 공유했다. "고생했어요 다들." 주니어 디자이너가 물었다. "형, '임팩트 부족'이라는 피드백 오면 어떻게 대응해요?" "물어봐. 계속. 구체적으로 될 때까지." "그럼 클라이언트 기분 나빠하지 않아요?" "정중하게 물어보면 오히려 좋아해. 자기 말 들어주는 거니까." 진짜다. 클라이언트는 디자이너가 방어적으로 나오는 걸 싫어한다. "이게 정답입니다"라는 태도도 싫어한다. 대신 "당신의 생각을 이해하고 싶습니다"라고 하면 마음을 연다. 디자인은 혼자 하는 게 아니다. 클라이언트와 함께 만드는 거다. 그들의 불명확한 피드백도, 사실은 협업의 일부다.'임팩트'라는 단어 뒤에는 항상 진짜 니즈가 숨어 있다. 찾아내는 게 우리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