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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판 사진을 찍는 일상 - 길 위의 리서치

간판 사진을 찍는 일상 - 길 위의 리서치

간판 사진을 찍는 일상 - 길 위의 리서치 출근길 루틴 아침 9시 40분. 집 나섰다. 합정역까지 도보 12분. 이 시간이 중요하다. 폰 카메라 켰다. 습관이다. 길 위의 모든 간판이 리서치 대상이다.오늘은 세탁소 간판이 눈에 띄었다. "삼일세탁소". 1978년부터라고 써있다. 파란색 바탕에 흰색 명조체. 페인트가 벗겨졌다. 찍었다. 5장. 각도 바꿔가며. 빛 받는 부분 집중해서. 옆 건물은 신축이다. 1층에 카페. 간판은 레이저 커팅한 스테인리스. 산세리프. 자간 넓게. 미니멀하다. 두 간판이 나란히 있다. 50년 차이. 이게 재밌다. 기록하는 이유 동료들은 묻는다. "왜 그렇게 사진 찍어요?" 모르겠다. 그냥 찍는다. 리서치라고 하기엔 목적이 없다. 취미라고 하기엔 진지하다. 폴더를 봤다. 간판 사진만 3,247장. 2년 치다. 분류는 안 한다. 날짜순으로 쌓인다. 그게 좋다. 타임라인이 생긴다. 가끔 스크롤 내린다. 작년 봄에 찍은 꽃집 간판. 지금은 치킨집이다. 도시가 바뀐다. 간판으로 알 수 있다. 한글 타이포의 층위 전통시장 갔다. 망원시장. 오후 미팅 전 시간이 남았다. 현수막이 많다. "국내산 돼지고기", "할인행사 중" 손글씨다. 매직으로 썼다.이게 진짜 타이포그래피다. 글자 크기가 불규칙하다. 중심선이 흔들린다. 그런데 읽힌다. 확실하게. 기능이 먼저다. '예쁘게'는 나중이다. 우리가 하는 건 반대다. 예쁘게 만들고 기능 맞춘다. 클라이언트는 '세련됨'을 원한다. 시장 상인은 '전달'을 원한다. 목적이 다르다. 골목 안쪽. "영희네반찬". 노란 바탕에 검은 붓글씨. 20년은 됐다. 페인트 겹겹이 쌓였다. 리브랜딩하면 어떨까. 산세리프로 바꾸고, 색 정리하고. 망칠 것 같다. 이 간판은 이대로가 맞다. 힙한 것들의 법칙 주말. 성수동 갔다. 새 카페가 열었다는 연락 받았다. 간판 봤다. 예상대로다. 고딕. 자간 200%. 흰색 아크릴.요즘 카페는 다 이렇다. 미니멀. 뉴트럴 톤. 심플. 틀렸다는 게 아니다. 공식이 있다는 게 흥미롭다. '힙함'의 문법이 있다.산세리프 자간 넓게 무채색 또는 파스텔 여백 많이 영문 섞기법칙을 따르면 안전하다. 클라이언트도 좋아한다. 문제는 차별화다. 다들 똑같아진다. 옆 건물 보니까 같은 폰트다. 2개월 전 우리가 쓴 거다. 클라이언트가 다른데 말이다. 웃겼다. 트렌드의 속도가 이렇다. 낡은 것의 가치 을지로 프로젝트 있었다. 로컬 브랜딩이다. 답사 나갔다. 인쇄소 골목. 간판이 오래됐다. "대흥인쇄사", "동양제본소". 명조체. 테두리 있고. 금박 들어갔다. 50년대 스타일이다. 지금 만들면 레트로다. 그때는 그냥 간판이었다. 사장님께 물었다. "간판 바꿀 생각 없으세요?" "뭐 하러요. 잘만 나가는데." 맞다. 30년 단골들은 이 간판을 찾는다. 바꾸면 헷갈린다. 브랜딩이 꼭 새 게 아니다. 유지하는 것도 전략이다. 클라이언트한테 말했다. "이 간판들 그대로 두는 게 어때요?" "그럼 우리가 뭘 하는 건데요?" 할 말이 없었다. 시간의 축적 사진 정리했다. 같은 장소를 다른 시기에 찍은 것들. 홍대 앞 건물. 2022년 3월: 레코드샵 2022년 11월: 팝업스토어 2023년 4월: 카페 2024년 1월: 공실 간판이 4번 바뀌었다. 2년도 안 됐다. 반대 케이스도 있다. 망원동 "청춘다방". 1987년부터 지금까지. 손님이 줄었다. 그래도 문 연다. 간판은 변함없다. 어느 쪽이 맞을까. 빨리 바뀌는 게 맞나. 오래 버티는 게 맞나. 답은 없다. 도시는 둘 다 필요하다. 무드보드의 재료 스튜디오 왔다. 신규 프로젝트 킥오프다. 클라이언트: "레트로 감성이요. 근데 세련되게." 예상했다. 항상 이렇게 말한다. 무드보드 만들었다. 간판 사진 10장 넣었다. 출근길에 찍은 것들이다. "이런 느낌에서 영감 받았어요." 클라이언트 눈빛이 달라졌다. "오, 이거 어디서 찍은 거예요?" 리서치의 힘이다. 레퍼런스를 핀터레스트에서 안 찾았다. 발로 찾았다. 차별화는 여기서 시작된다. 팀 막내가 물었다. "형, 이 사진들 어떻게 찍어요?" 간단하다. "길 걷다가 그냥 찍어." 관찰의 연습 디자이너는 관찰해야 한다. 학교에서 배운 얘기다. 현실은 다르다. 마감에 치이고, 수정에 지친다. 관찰할 시간이 없다. 출근길 12분. 이게 내 관찰 시간이다. 억지로라도 본다. 간판, 포스터, 전단지. 누가 만들었을까. 왜 저 색일까. 타깃은 누굴까. 생각하며 걷는다. 그게 쌓인다. 3년 전 나는 그냥 지나쳤다. "삼일세탁소" 간판. 지금은 5장 찍는다. 시선이 바뀌었다. 디자이너의 눈이 생겼다. 회의 중에 이야기한다. "저번에 본 간판 있는데요..." 누가 물었다. "어디서 봤는데요?" "출근길이요." 다들 웃는다. 그래도 듣는다. 길 위의 리서치가 통한다. 찍고 또 찍는다 오늘도 찍었다. 신촌 "옛날통닭". 1994년. 빨간 바탕에 노란 글씨. 흔한 조합이다. 그런데 이 집만의 느낌이 있다. 글자 획이 두껍다. 붓터치가 살아있다. 8장 찍었다. 언제 쓸지 모른다. 그냥 찍는다. 3,255장. 오늘 8장 더했다. 내일도 찍을 것이다. 도시는 매일 바뀐다. 간판도 바뀐다. 기록은 계속된다. 언젠가 쓸모 있을 거다. 아니어도 괜찮다. 찍는 그 자체가 연습이다.폰 용량이 부족하다. 간판 사진 때문이다. 지울 생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