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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Dec, 2025
브랜드 에센스를 설명하는 10분의 프레젠테이션
브랜드 에센스를 설명하는 10분의 프레젠테이션 오전 10시 37분 미팅룸 앞이다. 노트북 켰다. 빔프로젝터 연결 확인. 무드보드 파일 열었다. 3주 작업했다. 브랜드 에센스 한 문장. "일상의 틈새를 채우는 따뜻함." 클라이언트한테 이 한 줄 설명하는 데 10분 쓴다. 말이 안 된다. 근데 이게 내 일이다. 무드보드 17장. 컬러칩 8개. 폰트 샘플 5개. 레퍼런스 이미지 32장. 다 넣으면 60분 분량이다. 10분에 욱여넣어야 한다. 대표님이 들어왔다. "준비됐어요?" 됐다고 했다. 거짓말이다. 프레젠테이션은 항상 준비 안 된 채로 시작한다.첫 3분이 전부다 클라이언트 3명 앉았다. 대표, 마케팅 팀장, 디자인 담당자. 표정 읽는다. 대표는 회의적. 팀장은 기대 반. 담당자는 긴장. "안녕하세요. 시작하겠습니다." 첫 슬라이드. 브랜드명만 크게. 아무 설명 없다. 3초 멈췄다. 숨 쉴 시간이다. 내 숨이 아니라 그들의 숨. "3주 동안 이 브랜드가 뭔지 고민했습니다." 두 번째 슬라이드. "브랜드는 제품이 아니다." 큰 글씨. 또 3초. 팀장이 고개 끄덕였다. 좋은 신호다. "브랜드는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의 총합입니다. 우리는 그 감정을 디자인합니다." 클라이언트는 이론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근데 이론 없이 시작하면 나중에 '왜 이렇게 했냐'는 질문에 답 못 한다. 첫 3분은 명분 쌓는 시간이다. 세 번째 슬라이드. 경쟁사 로고 5개 나열. "시장은 이미 포화입니다." 대표가 앞으로 기울었다. 관심 생겼다. "그래서 우리는 다르게 말해야 합니다." 3분 지났다. 이제 본론이다.에센스라는 이름의 추상 "일상의 틈새를 채우는 따뜻함." 이 문장 만드는 데 일주일 걸렸다. 클라이언트 인터뷰 3시간. 타깃 리서치 2일. 동료들이랑 브레인스토밍 5시간. 퇴근길에 혼자 중얼거리며 수정한 횟수 20번. 근데 클라이언트한테는 10초 만에 던진다. "무슨 뜻이냐고요?" 예상한 질문이다. 항상 나온다. 다음 슬라이드. 사진 하나. 카페 창가에 앉은 사람. 햇살 한 줌. 커피 한 잔. 아무 설명 없다. "이 순간입니다." 5초 멈췄다. 이미지가 말하게 둔다. "바쁜 하루 중 10분. 혼자만의 시간. 따뜻한 음료 하나. 이게 당신들 브랜드가 파는 겁니다." 담당자가 메모했다. 좋은 신호다. 다음 슬라이드. 사진 3장. 출근길 지하철. 점심시간 공원 벤치. 퇴근 후 집 소파. 전부 '틈새'다. "제품은 텀블러입니다. 근데 우리가 파는 건 '나만의 시간'이에요." 팀장이 웃었다. "아, 그렇구나." 에센스는 추상이다. 근데 추상으로 설명하면 안 된다. 구체적 이미지로 번역해야 한다. 이게 프레젠테이션의 핵심이다. 6분 지났다. 이제 시각화다.컬러는 감정이다 "이 에센스를 색으로 만들었습니다." 컬러칩 3개. 따뜻한 베이지. 부드러운 테라코타. 깊은 카키. "베이지는 안정감입니다. 누구나 편한 색. 테라코타는 온기예요. 따뜻하지만 강렬하지 않은. 카키는 신뢰. 자연스러움." 대표가 물었다. "왜 파란색은 없어요?" 예상한 질문 2번. 클라이언트는 파랑 좋아한다. 신뢰의 색이니까. "파란색은 차갑습니다. 시원하죠. 근데 따뜻하진 않아요." 화면 넘겼다. 경쟁사 브랜드들. 전부 파랑, 초록, 회색. "시장은 이미 차가워요. 우리는 따뜻해야 합니다." 팀장이 고개 끄덕였다. 대표는 아직 확신 없다. 괜찮다. 컬러는 나중에 바뀐다. 항상 그렇다. 다음 슬라이드. 컬러 조합 예시. 베이지 바탕에 테라코타 포인트. 카키 텍스트. "이렇게 쓰면 따뜻하면서 세련됩니다." 담당자가 폰으로 찍었다. 마음에 든다는 뜻이다. "폰트 보시죠." 8분 지났다. 시간 없다. 빠르게 간다. 산세리프 2개. 둥근 느낌. 너무 딱딱하지 않게. "제목용, 본문용. 전부 가독성 높습니다. 근데 친근해요." 대표가 물었다. "이거 외국 폰트예요?" "네. 한글 폰트는 조합 제안서에 넣었습니다." 9분. "마지막입니다." 10분의 마법 마지막 슬라이드. 목업 3개. 텀블러에 로고. 쇼핑백에 패턴. 명함에 컬러. "이게 완성된 브랜드입니다." 말 안 했다. 보여줬다. 이미지가 설명한다. 5초 멈췄다. 호흡이다. "일상의 틈새를 채우는 따뜻함. 이 한 문장을 시각화했습니다." 10분 됐다. 딱 맞췄다. 대표가 먼저 박수쳤다. 팀장이 따라했다. 담당자는 웃었다. "질문 있으세요?" 항상 있다. 근데 이미 답은 프레젠테이션 안에 다 넣었다. "로고 시안은 언제 나와요?" "다음 주 월요일입니다. 오늘은 방향 공유였어요." 대표가 말했다. "좋습니다. 이 방향으로 가죠." 끝났다. 미팅룸을 나오며 복도에서 동료가 물었다. "어땠어?" "통과." "역시. 프레젠테이션 잘하더라." 잘하는 게 아니다. 많이 했을 뿐이다. 10분 프레젠테이션 준비 시간. 실제로는 3주다. 리서치 1주. 컨셉 개발 1주. 자료 정리 3일. 리허설 2일. 슬라이드 수정 10번. 근데 클라이언트는 10분만 본다. 자리 돌아왔다. 노트북 열었다. 다음 프로젝트 폴더. "브랜드 에센스 도출" 파일 새로 만들었다. 또 시작이다. 동료가 말했다. "커피 갈래?" "응." 복도 걸으면서 생각했다. 브랜드 에센스. 한 문장으로 만드는 마법. 10분으로 설명하는 기술. 이게 내 일이다. 추상을 구체로. 감정을 시각으로. 3주를 10분으로. 힘들다. 근데 재밌다.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주문했다. 오늘 세 번째다. "고생했어." 동료가 말했다. "아직 로고 작업 남았어." "그래도 오늘은 잘했잖아." 맞다. 오늘은 잘했다.3주를 10분에 우겨넣는 게 브랜드 디자이너의 일이다. 근데 그 10분이 통하는 순간, 3주가 아깝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