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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Dec, 2025
톤앤매너 가이드라인, 브랜드의 사용설명서
톤앤매너 가이드라인, 브랜드의 사용설명서 로고 하나 만들었다고 끝? 클라이언트가 연락했다. "로고 너무 좋아요. 근데 명함이랑 SNS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3개월 전에 납품한 프로젝트다. 로고 완성하고 AI 파일 넘기면서 끝냈다. 그게 실수였다. 클라이언트가 보낸 명함 시안을 봤다. 로고는 있는데 완전히 다른 브랜드 같았다. 폰트는 고딕, 컬러는 형광 노랑. 우리가 잡은 컨셉은 '절제된 럭셔리'였는데. "가이드라인 안 만들어드렸나요?" 물었더니 "그게 뭐예요?" 라고 한다. 내 잘못이다.로고 디자인은 시작이다. 끝이 아니다. 로고만 던져주면 클라이언트는 뭘 해야 할지 모른다. 디자이너가 아니니까. 그날 저녁, 톤앤매너 가이드라인 30페이지를 밤새 만들었다. 무료로. 내 책임이었으니까. 6개월 후, 브랜드가 망가진다 작년에 런칭한 카페 브랜드가 있다. 로고 예뻤다. 컨셉은 '북유럽 미니멀'. 베이지, 화이트, 우드톤. 6개월 후 인스타그램을 봤다. 충격이었다. 형광 핑크 이벤트 배너. 만화체 폰트. 무료 템플릿에서 가져온 듯한 그래픽. 브랜드가 사라졌다. 로고만 붙어있을 뿐이었다. 전화했다. "디자인 누가 하세요?" "아르바이트생이요. 인스타 잘해서." 가이드라인을 안 만들었다. 로고, BI 세트, 명함만 납품했다. 나머지는 알아서 하라고. 클라이언트는 디자인을 몰랐고, 아르바이트생은 예쁜 걸 좋아했다. 브랜드 컨셉 같은 건 몰랐다. 3개월 공들여 만든 브랜드가 6개월 만에 무너졌다.그때 깨달았다. 가이드라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브랜드의 사용설명서다. 디자이너가 떠난 후에도 브랜드는 계속 쓰인다. SNS 배너, 전단지, 이벤트 포스터, 굿즈. 그 모든 걸 디자이너가 만들 수 없다. 그럼 뭘 남겨야 하나. 가이드라인이다. 클라이언트는 디자이너가 아니다 당연한 얘긴데 자꾸 까먹는다. "로고는 5mm 이상으로만 쓰세요." 말로만 하면 안 된다. 6개월 후엔 잊는다. 1년 후엔 담당자가 바뀐다. "브랜드 컬러는 이 느낌으로." 느낌은 전달 안 된다. 내가 보는 베이지와 클라이언트가 보는 베이지는 다르다. "폰트는 고딕 말고 명조로." 그럼 어떤 명조? 몇 pt? 자간은? 디자이너는 감으로 안다. 클라이언트는 모른다. 그래서 적어줘야 한다. 구체적으로. 작년에 화장품 브랜드 작업했다. 로고 작고 섬세했다. 최소 사용 사이즈 15mm로 정했다. 가이드라인에 명시했다. 3개월 후 박람회 포스터 시안이 왔다. 로고가 3mm였다. 알아볼 수가 없었다. "가이드라인에 15mm라고 적혀있잖아요." "아 그거요? 파일을 못 찾았어요." PDF로 줬는데 못 찾는다. 이메일에 묻혔나보다.그 다음부턴 가이드라인을 두 곳에 준다. PDF 파일, 그리고 Notion 페이지. 링크로 바로 볼 수 있게. 담당자 바뀌면 링크만 넘기면 된다. 파일 찾을 필요 없다. 가이드라인엔 뭘 넣나 처음엔 막연했다. 뭘 써야 할지. 지금은 템플릿이 있다. 프로젝트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기본 구조는 같다. 1. 브랜드 에센스컨셉 한 문장 키워드 3개 무드보드디자인 의도를 적는다. "왜 이렇게 만들었는가." 클라이언트가 브랜드를 이해하게. 2. 로고 시스템메인 로고, 서브 로고, 시그니처 컬러 버전 / 흑백 버전 최소 사이즈 (mm 단위로) 여백 규정 (로고 높이의 몇 배) 금지 사항 (변형 예시)실제 사용 예시를 넣는다. 명함, 간판, 쇼핑백에 어떻게 들어가는지. 3. 컬러 시스템메인 컬러 / 서브 컬러 RGB, CMYK, HEX 코드 (다 적는다) 컬러 조합 예시 배경색 가이드"메인 컬러는 80% 이상 쓰지 마세요" 같은 룰도 넣는다. 4. 타이포그래피메인 폰트 / 서브 폰트 사용 위계 (제목 / 본문 / 캡션) 자간, 행간 권장값 폰트 라이선스 정보폰트 구입 링크도 넣어준다. 라이선스 만료되면 알람 오게. 5. 그래픽 요소패턴, 아이콘, 일러스트 스타일 사용 예시 금지 예시6. 적용 예시명함, SNS, 패키지, 사이니지 실제 목업 이미지이게 제일 중요하다. 글로만 적으면 이해 못 한다. 이미지로 보여줘야 한다. 가이드라인 만드는 데 일주일 로고 작업보다 오래 걸린다. 진짜다. 로고는 3주. 가이드라인은 1주. 비율이 그렇다. 처음엔 이해 못 했다. "로고 만드는 게 메인인데 왜 가이드라인에 일주일을?" 지금은 안다. 가이드라인이 없으면 로고는 의미 없다. 최소 사이즈 정하는 데만 하루 걸린다. 로고를 5mm, 10mm, 15mm, 20mm로 출력해본다. 실물로. 모니터랑 다르니까. 명함에 찍어본다. 간판 목업 만들어본다. 쇼핑백에 얹어본다. 그래야 "이 사이즈 이하론 안 되겠다" 감이 온다. 컬러 코드 정리하는 데도 반나절. RGB, CMYK, Pantone, HEX. 다 다르다. 인쇄소마다 달라 보인다. 실제 종이에 출력해서 확인한다. 모니터 색이랑 다르니까. CMYK로 찍으면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 한다. 폰트 자간, 행간은 실제 명함, 브로슈어 레이아웃 짜보면서 정한다. 숫자로 딱 정해놔야 나중에 안 헷갈린다. 일주일 꼬박 걸린다. 근데 이게 없으면 1년 후 다시 문의 온다. "이거 어떻게 써야 하죠?" 차라리 일주일 투자하는 게 낫다. 가이드라인을 무시하는 클라이언트 만들어줘도 안 보는 클라이언트 있다. "PDF 받았는데 용량이 커서 못 열었어요." 30MB였다. 요즘 폰으로도 여는데. "가이드라인대로 하니까 디자인이 딱딱해요." 그게 브랜드 일관성이다. "이번만 예외로 형광색 써도 될까요?" 예외는 없다. 한 번 허용하면 계속 무너진다. 제일 황당했던 건 이거다. "가이드라인 멋지긴 한데, 실제로 쓰기엔..." 그럼 왜 만들었나. 이런 클라이언트는 대부분 가격에 민감하다. "로고만 주시면 되는데 왜 가이드라인까지 만들어요? 비용 아까운데." 설득한다. "지금 2주 더 투자하면 1년 후 브랜드 일관성 유지됩니다. 그게 비용 절감이에요." 안 먹힌다. 결국 로고만 받아간다. 6개월 후 연락 온다. "브랜드가 왜 이렇게 중구난방이죠?" 그때 가서 가이드라인 만들자고 하면 비용이 두 배다. 처음부터 만드는 거랑 나중에 정리하는 건 난이도가 다르니까. 가이드라인 업데이트가 필요할 때 한 번 만들면 영원한 줄 알았다. 아니다. 브랜드는 산다. 성장한다. 변한다. 처음엔 로고, 명함, SNS만 있었다. 1년 후 패키징이 생긴다. 2년 후 굿즈가 나온다. 3년 후 공간 브랜딩이 필요하다. 가이드라인에 없는 케이스가 생긴다. "텀블러에 로고 넣으려는데 어떻게 해야 하죠?" 가이드라인엔 평면만 있다. 곡면 적용 예시가 없다. "야광 간판 만드는데 컬러가 이상해요." 발광 재질은 생각 못 했다. "굿즈 패키지에 로고 몇 개 들어가야 하죠?" 규정이 없다. 그럴 때마다 가이드라인을 업데이트한다. 버전 2.0, 3.0. 연간 계약 클라이언트는 1년에 한 번씩 업데이트 해준다. 신규 적용 사례 추가, 금지 사항 보완. 브랜드가 크면 가이드라인도 커진다. 처음엔 30페이지, 3년 후엔 80페이지. 그게 정상이다. 브랜드가 성장한다는 증거다. 가이드라인이 있어도 망하는 경우 만능은 아니다. 가이드라인 완벽하게 만들었는데 브랜드 망한 경우 봤다. 이유는 간단하다. 가이드라인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해서. "가이드라인대로 했는데 왜 브랜드가 재미없죠?" 클라이언트가 물었다. 봤더니 로고, 컬러, 폰트 다 맞다. 근데 레이아웃이 지루하다. 이미지가 뻔하다. 카피가 재미없다. 가이드라인은 최소한의 룰이다. 그 안에서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다. 요리로 치면 레시피다. 레시피대로만 하면 맛없는 음식 나올 수 있다. 불 조절, 타이밍, 정성이 필요하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또 다른 경우. 가이드라인이 너무 빡빡해서 아무도 못 따라하는 경우. "로고 여백은 정확히 8.5mm, 자간은 -5, 행간은 180%..." 이러면 디자이너도 짜증난다. 룰은 심플해야 한다. 외울 수 있을 정도로. "로고 주변엔 로고 높이만큼 여백" 이 정도면 된다. 정확히 8.5mm 안 맞아도 브랜드 안 망한다. 가이드라인 설명회를 한다 요즘은 가이드라인 PDF만 안 준다. 설명회를 한다. 클라이언트 팀 전체 모아놓고 1시간. 가이드라인을 같이 본다. "왜 이 컬러를 선택했는지", "로고 최소 사이즈가 왜 중요한지", "이렇게 쓰면 안 되는 이유". PDF만 받으면 안 본다. 같이 보면 이해도가 다르다. 마케팅 팀, 영업 팀, 운영 팀. 모두 브랜드를 쓴다. 다 알아야 한다. 설명회 후 Q&A 시간 갖는다. "인스타 스토리에는 어떻게 써요?", "전단지는요?", "간판은요?" 그 자리에서 즉석 목업 만들어준다. 노트북 들고 가서. 한 시간 투자하면 나중에 문의 전화 안 온다. 효율적이다. 가이드라인은 브랜드의 헌법 디자이너는 떠난다. 클라이언트는 남는다. 브랜드는 계속 쓰인다. 5년, 10년. 그동안 담당자 바뀐다. 대표 바뀐다. 디자인 트렌드 바뀐다. 그래도 브랜드는 유지돼야 한다. 일관성이 생명이니까. 가이드라인은 그 일관성을 지키는 장치다. "이건 왜 이래요?" 물으면 가이드라인 보여준다. "처음 만들 때 이런 의도였습니다." 신입이 와도, 외주 디자이너가 와도, 가이드라인 보면 안다. "아 이 브랜드는 이런 거구나." 가이드라인은 브랜드의 헌법이다. 함부로 바꾸면 안 된다. 물론 시대에 맞게 개정은 필요하다. 근데 본질은 지켜야 한다. 로고 리뉴얼해도 가이드라인은 업데이트할 뿐 사라지지 않는다. 요즘은 프로젝트 견적에 가이드라인을 필수로 넣는다. "로고 디자인 + 가이드라인 30페이지" 세트다. 클라이언트가 "가이드라인 빼면 안 돼요?"라고 물으면 "그럼 6개월 후 브랜드 망가집니다"라고 한다. 농담 아니다. 진짜 망가진다. 여러 번 봤다. 가이드라인 없는 브랜드는 사용설명서 없는 가전제품이다. 켤 순 있는데 제대로 못 쓴다.가이드라인 만드는 일주일이 1년 후를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