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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용 빨강 vs 브랜드 레드의 미묘한 차이

크레용 빨강 vs 브랜드 레드의 미묘한 차이

크레용 빨강 vs 브랜드 레드의 미묘한 차이 클라이언트: "빨강으로 해주세요" 또 시작이다. "로고 빨간색으로 하면 어떨까요?" 회의실에 앉은 클라이언트 대표님이 말했다. 좋다. 빨강. 나쁘지 않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어떤 느낌의 빨강을 원하세요?" 내가 물었다. 대표님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그냥... 빨강이요. 빨간색이요."500개가 넘는다. Pantone 레드 계열만. RGB로 표현 가능한 빨강은 수십만 개다. 그중 브랜드에 쓸 수 있는 건 30개 정도. 그중 이 브랜드에 맞는 건 3개.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건 하나다. 문제는 클라이언트도 뭘 원하는지 모른다는 거다. 내가 준비한 빨강 5개 다음 회의 때 가져갔다. 빨강 5개.Pantone 185C: 코카콜라 레드. 클래식. 강렬. 대중적. Pantone 1795C: 오렌지 기운 있는 레드. 젊고 활발함. Pantone 207C: 마젠타 섞인 레드. 고급스럽고 여성적. Pantone 7621C: 다크 레드. 와인 느낌. 프리미엄. Pantone 186C: 맨유 레드. 정열적. 스포티.각각 브랜드 샘플 붙여서 무드보드 만들었다. A3 용지 5장. 인쇄비만 3만원. "음... 다 비슷한데요?" 대표님이 말했다. 비슷하지 않다. 전혀.185C와 186C는 1도 차이다. 육안으로 거의 구분 안 된다. 근데 브랜드 적용하면 완전히 다르다. 185C는 '신뢰'다. 186C는 '열정'이다. 1도가 감정을 바꾼다. 크레용 빨강의 세계 클라이언트는 크레용 세트에서 자랐다. 12색, 24색, 많아야 36색. 빨강은 하나였다. 주황 아니고 분홍 아닌 그 하나. '빨강'이라는 단어가 하나의 색을 가리켰다. 그게 문제다. 디자이너는 다른 세계에서 자랐다. Pantone 책에서. Adobe RGB에서. CMYK 색분해에서. 빨강은 스펙트럼이다. 좌표다. 맥락이다. "따뜻한 빨강요? 차가운 빨강요?" 클라이언트는 멈췄다. 빨강이 따뜻하고 차가울 수 있다는 걸 처음 들었다. "빨강은 뜨거운 거 아니에요?" 아니다. 마젠타 섞인 빨강은 차갑다. 파랑 기운 있어서. 반대로 오렌지 섞인 빨강은 따뜻하다. 노랑 기운. 같은 '뜨거움'도 다르다. 불꽃 뜨거움이냐 열기 뜨거움이냐. 이 차이가 브랜드 인상을 만든다. 코카콜라가 그 빨강인 이유 185C다. Pantone 185C. 왜 하필 185C냐고 물으면 대답은 간단하다. 100년 썼으니까. 근데 처음엔 왜 선택했을까. 1886년 코카콜라 탄생. 당시 약국에서 팔았다. 시럽 형태. 병에 담았다. 경쟁자는 Pepsi가 아니라 다른 약들이었다. 약병은 대부분 갈색, 투명, 초록이었다. 차별화가 필요했다. 빨강을 선택했다. 근데 어떤 빨강? 너무 밝으면 싸 보인다. 너무 어두우면 약 같다. 오렌지 기운 있으면 어린애 음료 같다. 정답은 '순수한 빨강'이었다. RGB(227, 6, 19). CMYK(0, 97, 92, 0). C=0이다. 시안 0%. 청록색 기운이 전혀 없다. M=97. 마젠타 거의 풀. Y=92. 노랑도 거의 풀. 이게 만드는 빨강이 '정열적이면서 신뢰할 수 있는' 빨강이다. 100년 후 사람들은 그냥 '코카콜라 빨강'이라고 부른다.브랜드 레드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전략적 선택. 100년의 일관성. 크레용 빨강은 그냥 빨강이다. "좀 더 임팩트 있게요" 4차 수정 피드백이었다. "이 빨강, 좀 더 임팩트 있게 할 수 있을까요?" 있다. 채도 올리면 된다. S+10. 근데 물었다. "어떤 방향의 임팩트요? 강렬함? 세련됨? 에너지?" "음... 다요." 안 된다. 다는 없다. 강렬함 원하면 어두운 빨강이다. Value 낮추고 Saturation 올린다. Pantone 1807C 쪽. 세련됨 원하면 차가운 빨강이다. 마젠타 믹스. 207C 방향. 에너지 원하면 따뜻한 빨강이다. 오렌지 터치. 1795C. 세 개 다 '임팩트'있다. 근데 완전히 다른 브랜드 된다. "일단 다 해볼까요?" 클라이언트가 말했다. 했다. 3개 버전. 각각 로고, 명함, 쇼핑백 목업.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첫 번째 거요." 원래 안이었다. 1mm가 만드는 브랜드 산맥 Pantone 책 펼친다. Red 섹션. 186C 옆에 185C 있다. 육안으로 거의 같다. 근데 브랜드 적용하면 다르다. 186C: Manchester United, 서울시 로고, 하이네켄 스타 185C: Coca-Cola, Supreme, Levi's 왜 각자 그 색 선택했을까. 우연일까. 아니다. 맨유는 열정이 브랜드 코어다. 186C가 185C보다 미세하게 더 따뜻하다. Y값이 2% 높다. 그 2%가 '불타는 열정' 만든다. 코카콜라는 신뢰가 필요하다. 식음료니까. 185C가 186C보다 미세하게 더 순수하다. 균형잡혀있다. 그게 '믿을 수 있는 즐거움' 된다. 1mm다. CMYK 2% 차이. RGB 5포인트 차이. 이 1mm가 브랜드 산맥 만든다. 한쪽은 열정 산맥. 한쪽은 신뢰 산맥. 소비자는 의식 못 한다. 근데 느낀다. 클라이언트가 본 건 결과뿐 문제는 이거다. 클라이언트는 결과만 본다. 완성된 로고. 적용된 간판. 찍힌 명함. 과정은 안 본다. 왜 이 빨강인지. 왜 저 빨강 아닌지. "이 빨강이랑 저 빨강 차이가 뭐예요?" 설명한다. 10분. 색상환. 색온도. 브랜드 레퍼런스. 타겟 감성. 끝나고 나면 대표님이 말한다. "그래서 뭐가 더 좋은 건데요?" 더 좋은 게 아니다. 더 맞는 거다. 근데 '맞음'을 설명하기 어렵다. 감각이니까. 맥락이니까. "일단 이걸로 가시죠. 나중에 수정 가능하니까." 가능하다. 근데 안 한다. 사람들은 익숙해진다. 처음 본 빨강이 '우리 빨강' 된다. 1년 후 리브랜딩 제안하면 대표님이 말한다. "우리 빨강 바꾸는 거예요? 이거 우리 상징인데." 그래서 첫 선택이 중요하다. 빨강의 정치학 회의실 정치가 있다. "대표님은 이 빨강 좋아하세요." 마케팅 팀장이 말한다. 207C 가리키며. "근데 전 이게 낫다고 봐요." 디자인 팀장이 1795C 가리킨다. 나는 185C 밀고 있었다. 투표가 시작된다. 7명 회의. 민주적으로 결정하자고. 결과: 207C 4표, 185C 2표, 1795C 1표. 민주주의가 이겼다. 브랜드는 졌다. 207C는 이 브랜드에 안 맞는다. 타겟이 2030 남성인데 207C는 여성적이다. 마젠타 기운 강해서. 근데 대표님 딸이 좋아한다고 했다. 대학생. 딸 의견이 4표 만들었다. 설득했다. 20분. 타겟 분석. 경쟁사 색상. 적용 시뮬레이션. 결국 185C로 갔다. 대표님이 말했다. "처음부터 전문가 의견 따를 걸 그랬네요." 그럼 회의는 왜 했나. 브랜드 레드를 만드는 3시간 실제 작업 과정이다. 1시간: 브랜드 코어 분석. 핵심 가치 3개 추출. 감성 키워드 10개. 이걸 색으로 번역. 30분: 경쟁사 색상 분석. 업계 색상 트렌드. 차별화 포인트 찾기. 30분: 타겟 리서치. 이 세대가 선호하는 색온도. 문화적 맥락. 1시간: 후보 색상 10개 선정. Pantone, RGB, CMYK 좌표 정리. 각각 A4 컬러 출력. 30분: 로고 목업 제작. 10개 색상 각각 적용. 명함, 간판, 패키지 시뮬레이션. 30분: 최종 3개 선정. PT 자료 정리.3시간이다. 클라이언트는 10분 본다. "다 비슷한데요?" 비슷하지 않다. 각각 다른 전략이다. 다른 감정이다. 다른 미래다. 근데 설명 못 하면 '그냥 빨강' 된다. 색맹 테스트의 역설 재밌는 거 있다. 색맹 테스트 해보면 대부분 통과한다. 적록색맹 아니고 청황색맹 아니고. 근데 빨강 10개 놓고 구분하라면 못 한다. 훈련 안 된 눈은 2-3개로 그룹핑한다. "이건 밝은 빨강, 이건 어두운 빨강, 이건 분홍 같은 빨강." 디자이너 눈은 10개 다 구분한다. 훈련됐으니까. 역설이다. 생리적으로 정상인데 문화적으로 색맹이다. 클라이언트가 나쁜 게 아니다. 안 배웠을 뿐. 디자이너 역할이 여기 있다. 번역. 클라이언트가 느끼는 걸 색으로. 색을 전략으로. "이 빨강이 우리 브랜드를 이렇게 만들 겁니다." 3초 안에 설득 못 하면 진다. 프린터가 만드는 변수 더 복잡한 게 있다. 모니터에서 본 빨강 ≠ 프린터에서 나온 빨강 ≠ 간판에 적용된 빨강. RGB는 빛이다. 가산혼합. 섞을수록 밝아진다. CMYK는 잉크다. 감산혼합. 섞을수록 어두워진다. 같은 빨강 코드여도 출력 매체마다 다르다. 모니터 RGB(227, 6, 19) = Pantone 185C 프린터 CMYK(0, 97, 92, 0) = Pantone 185C 근데 프린터마다 다르다. HP는 약간 주황빛. Canon은 약간 자주빛. 간판은 또 다르다. LED 백라이트냐 형광등이냐에 따라. 실제 간판 달고 나면 대표님이 전화한다. "색이 다른데요?" 다르다. 당연히. 빛이니까. "그럼 이거 잘못된 거 아니에요?" 아니다. 이게 맞다. Pantone 185C 맞다. 근데 모니터에서 봤던 그 빨강 아니다. 설명한다. 10분. 가산혼합, 감산혼합, 색온도. 끝나면 대표님이 말한다. "그럼 처음에 간판 색으로 보여주시지." 불가능하다. 간판은 밤에 켜봐야 안다. 문화마다 다른 빨강 한국 빨강 ≠ 중국 빨강 ≠ 일본 빨강. 한국은 Pantone 186C 선호한다. 태극기 빨강. 익숙해서. 중국은 1788C. 더 진하고 어둡다. '중국홍' 전통. 황제 권위. 일본은 185C. 한국보다 약간 밝다. 히노마루 일장기. 글로벌 브랜드 하면 이거 고려해야 한다. 한국에서 잘 먹힌 빨강이 중국 가면 '싸 보인다'. 중국 빨강이 한국 오면 '무겁다'. 작년에 했던 프로젝트. 한중일 동시 론칭. 빨강 3개 버전 만들었다. 같은 브랜드. 다른 색상 코드.한국: 186C (C:0 M:95 Y:91 K:0) 중국: 1788C (C:0 M:100 Y:91 K:20) 일본: 185C (C:0 M:97 Y:92 K:0)육안으로 거의 구분 안 된다. 근데 각국에서 반응 달랐다. 한국: "우리 느낌이네요." 중국: "대기업 같아요." 일본: "깔끔하네요." 같은 브랜드가 다르게 읽힌다. 1mm 차이로. AI가 못 하는 것 요즘 AI 툴 많다. "브랜드 컬러 추천해드려요." 키워드 넣으면 팔레트 나온다. "혁신, 신뢰, 열정" 입력하면 빨강 3개 제시. 편하다. 빠르다. 근데 못 한다. 맥락 읽기. AI는 185C가 왜 코카콜라 빨강인지 모른다. 100년 역사 모른다. 경쟁사와의 1도 차이 전략 모른다. 키워드만 본다. "식음료 + 신뢰 = 185C" 근데 실제는 이렇다. "1886년 약국 시럽 + 경쟁자 갈색병 + 차별화 필요 + 청량감 + 100년 일관성 = 185C" 맥락이 색을 만든다. AI는 숫자 줄 수 있다. 근데 이유는 못 준다. 디자이너는 이유 판다. 클라이언트는 이유 산다. "왜 이 빨강인가요?" 3분 설명할 수 있으면 디자이너다. 못 하면 픽셀 푸셔. 10년 후에도 빨강일까 브랜드 레드는 진화한다. 코카콜라 185C, 100년 넘게 썼다. 근데 미세하게 바뀌었다. 1950년대 185C ≠ 2024년 185C. 인쇄 기술 바뀌었다. 모니터 생겼다. LED 생겼다. 같은 코드여도 구현 방식 달라지면 색 달라진다. 브랜드는 적응한다. 미세 조정한다. 소비자는 모른다. 그냥 "코카콜라 빨강" 본다. 10년 후엔 또 바뀔 것이다. 홀로그램 디스플레이 나오면. VR 보편화되면. 빨강의 정의가 바뀐다. 근데 '코카콜라 빨강'은 남는다. 브랜드 레드는 코드가 아니라 인상이니까. 크레용에서 Pantone까지 결국 이거다. 클라이언트는 크레용 12색 세계에서 산다. 빨강은 하나다. 디자이너는 Pantone 2000색 세계에서 산다. 빨강은 스펙트럼이다. 브랜드는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내 역할은 번역이다. 클라이언트가 상상하는 빨강을 Pantone 좌표로. 그 좌표를 브랜드 미래로. "그냥 빨강으로 해주세요." 괜찮다. 시작점이다. "어떤 빨강일까요?" 질문이 답을 만든다.185C와 186C, 1도 차이. 그 1도가 100년 브랜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