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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근 라면과 새벽 커피, 디자이너의 밤문화

야근 라면과 새벽 커피, 디자이너의 밤문화

야근 라면과 새벽 커피, 디자이너의 밤문화 오후 6시, 시작되는 진짜 업무 퇴근 시간이다. 다들 가방을 챙긴다. 나는 컵라면을 꺼낸다. 내일 오전 10시 PT다. 클라이언트는 대기업 마케팅팀 임원 3명. 준비 기간은 3주였지만, 진짜 작업은 오늘부터다. "형, 먼저 갈게요." "그래, 조심히 가." 사무실이 비기 시작한다. 20명 중 남은 건 나랑 후배 디자이너 하나. 이게 우리 업계 관례다. PT 전날은 무조건 야근. 빈말 아니다. 정말로 해야 할 게 산더미다.라면 끓이는 소리 편의점 컵라면. 1200원. 야근 횟수로 나누면 한 달에 4만원쯤 쓴다. 물 붓고 3분. 이 시간이 유일한 휴식이다. 핸드폰 보면서 인스타그램 스크롤. 다른 디자이너들도 야근 중이다. "#야근스타그램 #디자이너의밤 #PT전야" 다들 똑같이 산다. 라면 먹으면서 PT 자료 다시 본다. 슬라이드 62장. 브랜드 컨셉부터 응용 시스템까지. 클라이언트는 10분 안에 결정 내릴 건데, 우리는 3주 준비했다. "핵심 메시지가 약해." 후배가 말한다. 맞다. 1페이지부터 다시 본다. 라면이 불었다. 새벽 1시의 커피 편의점 다녀왔다. 아메리카노 2개, 에너지바 3개. 오늘 다섯 번째 커피다. "형, 로고 컬러 한 톤 더 밝게 갈까요?" "아니, 지금이 맞아. 브랜드 에센스 생각해봐." 새벽 1시부터가 진짜 작업 시간이다. 낮에는 회의, 메일, 전화에 시간 다 간다. 지금부터 집중 가능하다. 슬라이드 순서 바꾼다. 스토리 라인 다시 짠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 생각한다. '이 브랜드가 왜 필요한가?' '소비자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가?' 키보드 소리만 들린다. 에어컨 돌아가는 소리. 창밖은 깜깜하다. 합정동 카페 불도 다 꺼졌다. 커피 식었다. 다시 마신다.왜 이렇게까지 하나 아내한테 메시지 왔다. "언제 와? 걱정된다." "3시쯤. 미안." 같은 업계라 이해한다. 그래도 미안하다. 근데 이게 우리 일이다. PT 전날 야근은 빈말이 아니라 필수 의식이다. 완성도 높이는 마지막 기회다. 낮에 작업하면 80점까지 간다. 야근하면 95점 만들 수 있다. 그 15점 차이가 PT 결과를 바꾼다. 클라이언트는 몰라도, 우리는 안다. 디테일이 다르다는 걸. "형, 케이스 스터디 슬라이드 하나 더 넣을까요?" "넣자. 설득력 올라간다." 후배도 피곤한 얼굴이다. 근데 눈은 살아있다. 좋은 작업 나올 때 느끼는 그 긴장감. 우리는 지금 브랜드 만들고 있다. 누군가의 사업이, 제품이, 가치가 세상에 나가는 거다. 대충 할 수 없다. 새벽 3시의 마지막 점검 거의 다 됐다. 슬라이드 68장으로 늘었다. 6장 추가했다. 전체 다시 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 흐름 체크. 오타 확인. 이미지 해상도 점검. "형, 이거 괜찮은 것 같아요." "응, 잘 나왔다." 저장 세 번 한다. 클라우드에도 올린다. 내일 아침 혹시 모를 상황 대비. 짐 챙긴다. 노트북, 충전기, PT 인쇄물. 사무실 불 끈다. 문 잠근다. 택시 탄다. 기사님이 묻는다. "야근이세요?" "네, PT 준비요." "고생 많으시네요." 고생이다. 근데 선택했다. 이 일을, 이 업계를, 이 방식을.오전 10시, PT룸 앞 3시간 잤다. 샤워하고 양복 입었다. 커피 마시고 PT룸 도착. 9시 50분. 클라이언트 오기 전에 세팅한다. 노트북 연결, 슬라이드 테스트, 조명 확인. 후배가 물 준비했다. 자료집도 깔끔하게 놨다. "떨려요, 형." "나도. 근데 잘 만들었잖아." 문 열린다. 임원 3명 들어온다. 악수하고 인사한다. PT 시작한다. "안녕하십니까. 오늘 제안 드릴 브랜드 컨셉은..." 68장 슬라이드가 넘어간다. 어젯밤 우리가 만든 세계가 펼쳐진다. 클라이언트가 고개 끄덕인다. "컨셉이 명확하네요." "스토리 라인이 탄탄합니다." 1시간 PT 끝났다. "좋습니다. 이 방향으로 진행하죠." 계약 성사됐다. 점심 먹으면서 후배랑 삼겹살 먹는다. 소주 한 잔씩. "형, 우리 진짜 잘했죠?" "그래, 수고했다." 피곤하다. 근데 뿌듯하다. 어젯밤 야근이 만든 결과다. 라면 먹고, 커피 마시고, 새벽까지 작업한 시간들. 그게 쌓여서 좋은 PT가 나왔다. 이게 우리 업계 문화다. 비효율적이라고? 맞다. 건강에 안 좋다고? 그것도 맞다. 근데 이렇게 안 하면 완성도가 안 나온다. 경쟁 PT에서 이길 수 없다. 클라이언트를 설득할 수 없다. "형, 다음 PT는 언제예요?" "다음 주 금요일." 또 야근이다. 또 라면 먹는다. 이게 브랜드 디자이너의 밤문화다. 왜 계속 하는가 집에 왔다. 오후 4시. 아내는 아직 회사다. 혼자 소파에 눕는다. 피곤하다. 근데 잠 안 온다. 머릿속에 다음 프로젝트가 맴돈다. 내일 클라이언트한테 메일 온다. "계약서 검토 부탁드립니다." "다음 미팅은 언제가 좋으세요?" 그럼 또 시작이다. 컨셉 회의, 무드보드, 시안 작업, PT 준비. 그리고 또 야근한다. 컵라면 먹고, 새벽 커피 마신다. 왜 이렇게 사는가? 돈 때문? 아니다. 연봉 6200만원. 많지 않다. 명예 때문? 그것도 아니다. 일반인들은 우리 일 모른다. 그럼 뭐 때문인가? 브랜드가 세상에 나가는 순간이 좋아서다. 우리가 만든 로고가 간판에 걸리는 거 보면 짜릿하다. 클라이언트 사업이 잘 돼서 감사 메일 오면 뿌듯하다. 그게 우리를 계속 일하게 만든다. 야근하게 만들고, 라면 먹게 만들고, 커피 마시게 만든다. 밤의 의식 브랜드 디자이너의 야근은 단순 노동이 아니다. 완성도를 높이는 의식이다. 낮에는 현실적으로 일한다. 밤에는 이상적으로 만든다. 클라이언트 요구사항 맞추는 게 낮 작업이라면, 우리가 원하는 완성도 채우는 게 밤 작업이다. 컵라면은 연료다. 커피는 집중력이다. 새벽 공기는 영감을 준다. 텅 빈 사무실에서 모니터 불빛만 보고 작업할 때, 가장 순수하게 디자인에 집중할 수 있다. 전화 안 온다. 메일 안 온다. 미팅 없다. 오로지 화면 속 작업물만 있다. 이 시간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PT 성공시킨다. 브랜드 완성한다. 다음 야근 준비 편의점 갔다. 컵라면 5개 샀다. 다음 주 PT 대비해서. 계산하면서 생각했다. '이번엔 신라면으로 할까, 진라면으로 할까.' 선택했다. 신라면 3개, 진라면 2개. 다음 주 야근 메뉴 완성. 집에 오면서 하늘 봤다. 별이 보인다. 새벽 4시 하늘. 내일 또 출근한다. 클라이언트 메일 확인하고, 회의하고, 작업한다. 그리고 다시 야근한다. 라면 끓이고, 커피 마시고, PT 준비한다. 이게 우리 일이다. 브랜드 디자이너의 밤문화다.다음 주 PT도 성공할 거다. 라면 5개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