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디자인은 왜 1년씩 걸리나
- 16 Dec, 2025
클라이언트가 본 로고 작업: 3일
“로고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려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대답이 막힌다.
“3일이요” 라고 하면 “그럼 300만원은 너무 비싼 거 아니에요?” 라고 온다.
“3개월이요” 라고 하면 “그렇게 오래 걸려요?” 라는 반응.
정답은 둘 다다. 그리고 둘 다 아니다.

클라이언트가 보는 로고 작업은 이렇다.
1차 미팅: 브리핑 듣고 방향 논의 (2시간) 2차 미팅: 컨셉 3개 발표 (1시간) 3차 미팅: 최종안 확정 (30분)
총 3시간 반. 3일이면 충분해 보인다.
실제로 클라이언트와 마주하는 시간은 그 정도다.
문제는 그 사이에 있는 시간이다.
보이지 않는 99%의 시간.
우리가 실제로 하는 것: 12개월
작년에 진행했던 프로젝트 하나.
카페 브랜드. 로고 디자인 의뢰.
클라이언트 미팅은 총 4번. 약 6시간.
실제 작업 시간은 누적 187시간.
이 숫자는 타임트래커로 확인한 것이다.
187시간이 어디로 갔나.
1단계: 리서치 (40시간)
카페 시장 조사. 경쟁사 로고 분석.
타겟 고객 라이프스타일 리서치.
비슷한 업종 해외 사례 100개 수집.
관련 서적 3권 읽음. 노트 정리.
브랜드 키워드 추출. 무드보드 제작.
클라이언트 인터뷰 3회. 녹취 정리.
이 단계에서 이미 한 달 지났다.
아직 펜을 들지도 않았다.

2단계: 스케치 (60시간)
처음 한 주는 노트에만 낙서한다.
키워드에서 떠오르는 모든 형태를 그린다.
커피잔, 원두, 증기, 손글씨, 기하학.
100개쯤 그리면 패턴이 보인다.
“아, 이 방향은 아니구나.”
그럼 다시 50개 더 그린다.
이 중에 괜찮은 게 5개 나온다.
5개를 일러스트로 옮긴다.
옮기면서 디테일이 바뀐다.
곡선 각도, 선 굵기, 비례.
5개가 15개 배리에이션이 된다.
15개를 A4 용지에 인쇄해서 벽에 붙인다.
사흘 동안 출근할 때마다 본다.
“2번이 제일 낫네. 근데 뭔가 부족해.”
다시 10개 더 그린다.

3단계: 정제 (50시간)
이제 진짜 작업이다.
선택된 3개 방향을 완성도 있게 만든다.
포인트는 ‘완성도 있게’ 다.
로고는 1mm가 다르면 느낌이 달라진다.
‘ㅇ’ 모양 하나 만드는 데 2시간 쓴다.
정원? 타원? 어느 쪽으로 찌그러뜨릴까?
상단을 1px 올리니 가벼워 보인다.
좌측을 0.5px 당기니 안정감이 생긴다.
이런 걸 각 요소마다 반복한다.
글자 간격. 0.1pt씩 조정하면서 테스트.
“너무 붙어 있나? 너무 떨어졌나?”
50번쯤 왔다갔다하면 답이 나온다.
컬러 테스트. 같은 형태에 색 100가지.
RGB 한 단계 차이로 느낌이 다르다.
#2A2A2A와 #2B2B2B. 일반인은 못 본다.
우린 본다. 그래서 고민한다.
4단계: 테스트 (37시간)
로고를 실제 상황에 넣어본다.
간판, 컵, 쇼핑백, 명함, 인스타그램.
각 매체마다 사이즈가 다르다.
간판에서 멋진 로고가 명함에선 뭉개진다.
그럼 디테일을 조정한다.
작은 사이즈용 버전을 따로 만든다.
흑백 버전도 만든다. 단색 버전도.
각 버전이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목업 제작. 실제 사진에 합성.
“실제로 보면 이런 느낌이구나.”
여기서 또 수정이 나온다.
“간판에선 좋은데 컵에선 이상해.”
다시 조정. 테스트. 조정. 테스트.
무한 반복.
보이지 않는 시간들
프레젠테이션 준비만 20시간.
컨셉 설명 문구 작성. 수정. 다시 작성.
PT 자료 레이아웃. 순서 조정.
리허설. 혼자 발표 연습.
“이 부분에서 반응이 안 좋을 것 같은데.”
예상 질문 리스트 작성. 답변 준비.
클라이언트 피드백 해석하는 시간.
“좀 더 임팩트 있게”가 뭔 뜻인지 파악.
3일 동안 고민. 동료들과 회의.
“아, 색상을 말하는 거구나.”
수정 작업. 다시 20시간.
내부 리뷰. 대표님 피드백.
“이건 아닌 것 같은데.”
다시 조정. 10시간 더.
왜 이렇게 오래 걸리나
로고는 단순해 보인다.
선 몇 개. 글자 몇 자.
“저것도 못 만들어?”
만들 수 있다. 10분이면 된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로고는 브랜드의 얼굴이다.
10년 쓸 수도 있는 것이다.
모든 접점에서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해야 한다.
단순한 게 제일 어렵다.
복잡한 건 숨길 데가 있다.
단순한 건 모든 게 드러난다.
선 하나, 각도 하나가 다 보인다.
나이키 스우시. 선 하나다.
그 선 하나 만드는 데 몇 달 걸렸을까.
애플 로고. 사과 하나다.
그 사과의 곡선을 몇 번 그렸을까.
우리가 쉽다고 느끼는 로고들.
그게 쉬워 보이는 이유는.
누군가 1년을 써서 단순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는 모른다
이 과정을 설명해도 이해 못 한다.
“그냥 예쁘게 만들면 되는 거 아니에요?”
예쁜 건 쉽다. 인스타에 널렸다.
우리가 만드는 건 ‘작동하는’ 로고다.
10년 후에도 촌스럽지 않은 로고.
명함에도 간판에도 잘 어울리는 로고.
경쟁사와 확실히 구별되는 로고.
브랜드 가치를 정확히 전달하는 로고.
이런 걸 만들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하지만 클라이언트는 결과만 본다.
“로고 3개요? 음… 2번이 좋네요.”
그 2번 뒤에 100개가 있다는 걸.
그 100개 뒤에 200시간이 있다는 걸.
모른다.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딜레마
빨리 만들면 “성의 없다” 한다.
오래 걸리면 “왜 이렇게 늦냐” 한다.
비싸게 받으면 “로고 하나에 이 돈을?” 한다.
싸게 받으면 “실력이 별로구나” 생각한다.
프로세스를 설명하면 지루해한다.
설명 안 하면 “뭐 하는 거예요?” 한다.
이게 브랜드 디자이너의 숙명이다.
보이지 않는 노동.
인정받지 못하는 시간.
결과로만 평가받는 작업.
그래도 한다. 왜냐면.
그 1년이 만든 로고 하나가.
브랜드를 10년 먹여 살리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1년이다
정확히는 1년이 아니다.
프로젝트마다 다르다.
2주 만에 끝나는 것도 있다.
6개월 걸리는 것도 있다.
평균하면 3개월쯤.
하지만 그 3개월 안에.
지난 9년의 경험이 들어간다.
봐왔던 수천 개의 로고.
실패했던 수백 개의 시도.
배웠던 디자인 원리.
쌓아온 안목.
이 모든 게 로고 하나에 들어간다.
그래서 로고는 시간이 아니라 경험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걸 클라이언트한테 설명하면.
“그건 당신 공부 시간이잖아요” 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할 말이 없다.
그냥 만든다. 보여준다.
“와, 좋네요” 하면 끝이다.
그 뒤의 1년은. 우리만 안다.
로고 3개 PT 준비하러 간다. 밤샐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