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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
- 05 Jan, 2026
클라이언트 미팅 외근이 많은 이유
클라이언트 미팅 외근이 많은 이유 오전 10시, 사무실에 30분 출근했다. 책상에 앉았다. 메일 확인했다. "오늘 오전 11시 미팅 잊지 마세요." 30분 만에 나간다. 노트북 챙기고, 무드보드 출력물 챙기고, 명함 챙기고. 사무실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길다. 이게 에이전시 디자이너의 현실이다. 동료가 웃으면서 말했다. "너 책상에 먼지 쌓이겠다." 틀린 말이 아니다.11시, 강남 클라이언트 사무실 지하철 2호선 탔다. 30분 걸린다. 클라이언트는 IT 스타트업이다. 브랜드 리뉴얼 프로젝트. 3개월째다. 회의실 들어가니 5명이 앉아있다. 대표, 마케팅 팀장, 개발자 2명, 인턴.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노트북 켰다. 프로젝트 파일 열었다. 왜 사무실에서 화상 미팅 안 하냐고? 해봤다. 안 된다. 화면으로 보면 디테일이 안 보인다. 색감이 다르게 보인다. 반응이 즉각적이지 않다. 무엇보다, 눈을 못 마주친다. 브랜딩은 설득이다. 설득은 대면이다. 클라이언트 표정 봐야 한다. "음..." 하는 그 미묘한 반응, 고개 살짝 갸우뚱하는 거, 팀장이 대표 눈치 보는 거. 그걸 읽어야 다음 슬라이드로 넘어갈지, 아니면 더 설명할지 판단한다. "컨셉은 이렇습니다." 무드보드 펼쳤다. A3 사이즈 3장. 사진, 텍스처, 컬러 칩, 레퍼런스 이미지. 손으로 짚어가며 설명했다. "이 톤앤매너가 타겟 고객층과 맞아떨어집니다." 대표가 고개 끄덕였다. 좋다. 마케팅 팀장이 물었다. "근데 이거 경쟁사랑 차별화가 될까요?" 예상한 질문이다. "그래서 이 요소를 추가했습니다." 두 번째 보드 펼쳤다. 1시간 반 미팅했다. 피드백 5가지 받았다. 다음 주까지 수정본이다.1시, 점심은 혼자 미팅 끝나고 나왔다. 배고프다. 근처 김밥천국 들어갔다. 김치찌개 7000원. 혼자 먹는다. 노트북 켜서 피드백 정리한다. "로고 컬러 좀 더 밝게", "서브 컬러 추가 검토", "폰트 2개 더 제안". 메모하면서 먹는다. 밥알이 키보드에 떨어졌다. 털어냈다. 에이전시 디자이너는 점심시간도 애매하다. 사무실 있으면 팀원들이랑 같이 먹는다. 밖에 있으면 혼자다. 미팅 시간에 맞춰 움직이니까. 11시 미팅 끝나면 1시, 2시 미팅 있으면 12시에 먹어야 한다. 오늘은 3시에 두 번째 미팅이다. 홍대다. 1시간 반 남았다. 카페 가야겠다. 2시, 카페에서 급 수정 스타벅스 들어갔다. 아메리카노 주문했다. 구석 자리 앉았다. 콘센트 있는 곳. 노트북 켰다. 일러스트 열었다. 아까 받은 피드백 중에 급한 거 하나 있다. 오후 미팅 전에 보여줘야 한다. 로고 컬러 변형 3가지. 30분 안에 만든다. 카페에서 작업하는 게 익숙하다. 사무실보다 집중 잘 될 때 있다. 주변 소음이 오히려 좋다. 너무 조용하면 딴 생각 난다. 옆 테이블에서 누가 통화한다. "네, 알겠습니다. 확인하겠습니다." 나도 저럴 거다. 1시간 뒤에. 작업 끝냈다. 저장하고, 클라우드 올렸다. 클라이언트가 폰으로도 볼 수 있게. 시간 확인했다. 2시 50분. 홍대까지 10분. 간다.3시, 홍대 공유오피스 두 번째 미팅이다. 클라이언트는 패션 브랜드. 신규 론칭 준비 중. 대표가 젊다. 31살. 나보다 어리다. 공유오피스 회의실 예약했다고 했다.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박브랜드입니다." 악수했다. 명함 받았다. 이번 미팅은 첫 미팅이다. 킥오프. 프로젝트 방향 잡는 자리다. 브랜드 네이밍부터 BI, 패키지까지 전체 작업이다. "먼저 브랜드가 추구하는 가치가 뭔지 여쭤봐도 될까요?" 질문하고 메모한다. 노트북 타이핑하면서 눈 마주친다. 대표가 말한다. 브랜드 스토리, 타겟 고객,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지. 30분 들었다. 중간중간 질문했다. "경쟁 브랜드는 어디로 보세요?" "가격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떤 감성을 전달하고 싶으세요?" 질문이 많다. 초반 미팅은 이렇다. 듣는 게 일이다. 클라이언트가 하고 싶은 말 다 들어줘야 한다. 그래야 컨셉이 나온다. 1시간 반 미팅 끝났다. 다음 주에 컨셉 PT 하기로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왔다. 4시 반이다. 사무실 갈까, 말까. 고민했다. 가도 1시간 있다가 퇴근이다. 그냥 집 간다. 왜 이렇게 밖에서 일할까 에이전시 일의 50%는 사무실 밖에서 일어난다. 과장 아니다. 실제로 그렇다. 이유가 있다. 첫째, 클라이언트가 원한다. "사무실로 와주세요." 이게 기본이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당연하다. 돈 내는 쪽이 갑이다. 우리가 찾아가야 한다. 그게 서비스다. 둘째, 프로젝트마다 클라이언트가 다르다. 한 달에 34개 프로젝트 돌아간다. 클라이언트가 34곳이다. 강남, 홍대, 여의도, 판교. 다 다르다. 매번 사무실로 오라고 할 수 없다. 우리가 움직인다. 셋째, 미팅 장소가 전략이다. 클라이언트 사무실 가면, 그쪽 분위기 파악된다. 직원들 표정, 사무실 인테리어, 회의 문화. 이게 다 브랜딩 힌트다. "아, 이 회사는 수평적이네." "여기는 보수적이구나." 그걸 보고 컨셉 조정한다. 넷째, 이동 시간이 생각 시간이다. 지하철 타고 가면서 생각한다. "아까 저 반응은 뭐였지?" "이 부분 더 강조해야겠다." 걸으면서, 타면서, 기다리면서. 계속 생각한다. 사무실에만 있으면 이런 시간 없다. 바로 다음 작업 들어간다. 다섯째, 신뢰는 얼굴로 쌓인다. 화상 미팅 10번보다, 대면 미팅 1번이 낫다. 눈 마주치고, 악수하고, 같이 커피 마시는 거. 이게 신뢰다. 클라이언트가 나를 기억한다. "그때 그 디자이너, 괜찮더라." 다음 프로젝트 때 또 찾는다. 외근의 단점 좋은 것만은 아니다. 체력 소모가 크다. 하루 3군데 돌면 녹초다. 아침 9시 출근, 10시 첫 미팅, 1시 두 번째, 4시 세 번째. 저녁 7시 되면 기진맥진이다. 이동하면서 카페인 3잔 마신다. 몸이 안 좋다. 작업 시간이 줄어든다. 미팅만 하고 오면 실제 작업은 언제 하나. 저녁에 한다. 야근이다. 아니면 주말에 한다. 미팅 준비하고, 미팅하고, 피드백 정리하고. 작업은 그다음이다. 집중이 안 된다. 사무실에 앉아있는 시간이 짧다. 큰 작업은 못 한다. 2~3시간 집중이 필요한 건 집에서 한다. 디테일 작업, 타이포 조정, 목업 작업. 이런 건 밤에. 비용이 든다. 교통비, 커피값, 점심값. 회사에서 지원해주긴 한다. 그래도 내 돈 들어갈 때 있다. 카페에서 자리 차지하려면 커피 사야 한다. 하루 2~3잔. 한 달이면 10만원 넘는다. 경계가 흐려진다. 사무실과 밖의 경계가 없다. 카페도 일터, 지하철도 일터, 클라이언트 사무실도 일터. 퇴근이 언제인지 모르겠다. 집 가는 길도 일 생각한다. 쉬는 게 없다. 외근 많은 디자이너의 생존법 적응했다. 9년 하니 노하우 생긴다. 첫째, 가방이 중요하다. 노트북, 충전기, 마우스, 무드보드 출력물, 명함, 수첩. 다 들어가는 가방. 백팩 쓴다. 양손 자유로워야 한다. 무거워도 어쩔 수 없다. 이게 내 사무실이다. 둘째, 클라우드 동기화. 모든 파일 클라우드에 올린다. 집에서도, 카페에서도, 클라이언트 사무실에서도 열린다. "아, 파일 사무실에 두고 왔네." 이거 없다. 드롭박스, 구글 드라이브, 어도비 클라우드. 다 쓴다. 셋째, 미팅 전후 30분 확보. 미팅 30분 전에 도착한다. 커피 마시면서 자료 정리한다. 미팅 끝나고 30분은 피드백 정리한다. 바로 다음 미팅 가면 머릿속 뒤죽박죽이다. 넷째, 이동 시간 활용. 지하철에서 폰으로 레퍼런스 찾는다. 핀터레스트, 비핸스 스크롤한다. "이거 괜찮네." 싶으면 저장한다. 이동 시간이 영감 시간이다. 다섯째, 단골 카페 만든다. 각 지역마다 단골 카페 있다. 강남, 홍대, 여의도. 각각 2~3곳씩. 콘센트 위치 안다. 조용한 자리 안다. 와이파이 빠른 곳 안다. 낯선 카페 가면 시간 버린다. 자리 찾고, 와이파이 연결하고. 여섯째, 점심 시간 유연하게. 12시에 안 먹어도 된다. 2시에 먹어도 된다. 미팅 스케줄에 맞춘다. 배고프면 편의점 삼각김밥. 이것도 익숙하다. 일곱째, 체력 관리. 주말에 쉰다. 확실히 쉰다. 평일에 밖에서 뛰어다니면 주말은 집에 있는다. PT 주 2회 다닌다. 체력 없으면 못 버틴다. 외근이 주는 것 힘들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 도시를 안다. 서울 구석구석 다닌다. 지하철 노선 외운다. "강남에서 홍대까지 40분", "여의도에서 성수까지 30분". 머릿속에 지도 있다. 동네마다 분위기 다르다. 그게 재밌다. 사람을 만난다. 사무실에만 있으면 동료만 본다. 밖에 나가면 클라이언트, 다른 업계 사람들 만난다. 스타트업 대표, 마케터, 개발자, 다른 디자이너. 네트워크 넓어진다. 인맥이 자산이다. 트렌드를 느낀다. 클라이언트 사무실 가면 느낀다. "요즘 이런 거 유행이네." "이 회사는 이렇게 일하네." 몸으로 배운다. 사무실에 앉아서 모니터만 보면 모른다. 유연해진다. 어디서든 일한다. 카페, 공유오피스, 지하철, 클라이언트 사무실. 장소 안 가린다. 노트북만 있으면 된다. 이게 경쟁력이다. 재택도 자유롭다. 어디서든 같은 퀄리티 낸다. 컨셉이 풍부해진다. 밖에서 보는 게 많다. 간판, 포스터, 사람들 옷, 카페 인테리어. 전부 레퍼런스다. "아, 이거 다음 프로젝트에 쓸 수 있겠다." 영감은 밖에 있다. 사무실 책상에 없다.에이전시 디자이너의 가방은 무겁다. 그 안에 사무실이 다 들어있으니까.
- 21 Dec, 2025
클라이언트와 첫 미팅, 질문이 답인 이유
클라이언트와 첫 미팅, 질문이 답인 이유 말하고 싶은 충동 첫 미팅 때마다 느낀다. 말하고 싶어 죽겠다는 걸. "저희는 이런 프로젝트 많이 했고요,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될 것 같습니다." 신입 시절엔 이렇게 시작했다. 포트폴리오 10분 동안 설명하고, 우리 작업 방식 소개하고, 예상 결과물 이야기하고. 클라이언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프로젝트는 항상 삐걱거렸다. 3차 수정 들어갈 때쯤 깨달았다. 우리가 만든 건 우리가 생각한 브랜드였다는 걸. 클라이언트가 원한 브랜드가 아니라.경력 5년차에 처음 프로젝트 리드를 맡았다. 로컬 베이커리 브랜딩. 대표님은 40대 여성. "예쁘고 감각적인 거 원해요." 그때 나는 똑똑했다고 생각했다. "요즘 트렌드는 미니멀이죠. 세리프 폰트에 크림 컬러 베이스, 빈티지 무드 가미하면..." 대표님이 끊었다.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데요?" 그 질문에 답을 못 했다. 트렌드는 알았는데, 이 브랜드를 몰랐다. 듣는 기술 지금은 첫 미팅에서 거의 안 말한다. 15분 소개하고, 나머지 1시간 45분은 질문한다. "왜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경쟁사 중에 부러운 브랜드가 있나요?" "10년 후 이 브랜드가 어떤 말을 듣길 원하세요?" 처음엔 클라이언트가 당황한다. "그걸 디자이너가 제안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니다. 브랜드의 본질은 클라이언트 안에 있다. 우리는 그걸 끄집어내는 사람이다.작년에 스타트업 브랜딩을 했다. 헬스케어 앱. 대표는 30대 초반 개발자 출신. "타겟이 누구예요?" "2030 여성이요." "왜 여성이에요?" "건강에 관심 많잖아요." "남성은 건강에 관심 없나요?" 대표가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사실 제 와이프가 임신하면서 건강 앱을 찾았는데, 다 너무 딱딱하더라고요." 거기서부터 시작이었다. 타겟은 '건강에 관심 많은 여성'이 아니라 '변화하는 몸과 마주한 사람들'이었다. 임산부, 갱년기 여성, 체력이 떨어지는 중년 남성. 브랜드 네임도 바뀌었다. 'Health Plus'에서 'With Body'로. 컬러도 민트에서 따뜻한 테라코타로. 클라이언트가 말한 15분 때문에 전체 방향이 바뀌었다. 그 질문 안 했으면? 우리는 민트색 '건강한 20대 여성' 브랜드를 만들었을 거다. 3개월 후 망하는. 침묵의 가치 질문의 핵심은 침묵이다. 질문하고 기다리는 것.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3초를 못 참는다. 클라이언트가 답을 안 하면 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거나, 본인이 답을 제시한다. "아마 이런 느낌을 원하시는 것 같은데..." 그 순간 대화는 끝난다. 클라이언트는 고개만 끄덕이게 된다.지난달 식품 브랜드 미팅. 3대째 이어온 전통 장류 회사. 대표는 60대 남성. "이 장이 특별한 이유가 뭔가요?" 대표님이 한참을 말 안 했다. 30초쯤 지났을까. 팀 막내가 다음 질문 넘기려고 하는데, 내가 손으로 제지했다. 50초쯤 지나서 대표님이 말했다. "아버지가 장 뜨는 날이면, 새벽 4시에 일어나셨어요. 그때 장맛이 가장 좋다고. 근데 과학적으론 말이 안 되죠. 온도는 똑같으니까. 그런데 저도 모르게 새벽에 장 뜨게 되더라고요." 그 이야기가 브랜드 컨셉이 됐다. '새벽의 정성'. 로고는 해 뜨기 전 하늘색. 패키지에는 시계를 넣었다. 04:00. 30초를 못 참았으면? "전통의 맛입니다" 같은 뻔한 카피였을 거다. 클라이언트는 답을 안다. 다만 정리가 안 되어 있을 뿐. 우리가 해줄 건 시간이다. 생각할 시간. 진짜 질문과 가짜 질문 모든 질문이 다 좋은 건 아니다. 가짜 질문이 있다. "어떤 느낌을 원하세요?" "선호하는 컬러가 있나요?" "레퍼런스 보내주실 수 있나요?" 이건 질문이 아니다. 답변 수집이다. 체크리스트 채우기. 진짜 질문은 '왜'를 묻는다. "왜 이 사업을 시작했어요?" "왜 지금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왜 저희를 선택했어요?" 작년에 경쟁 PT가 있었다. 패션 스타트업. 우리 포함 3개 에이전시. 다른 팀들은 30분 동안 포트폴리오 보여주고, 예상 결과물 프레젠테이션 했다. 우리는 20분 소개하고, 40분 질문했다. "기존 브랜드들이 놓치고 있는 게 뭐라고 보세요?" "당신이 만들고 싶은 건 브랜드인가요, 커뮤니티인가요?" "돈이 무한대면 어떤 브랜드를 만들고 싶으세요?" PT 끝나고 일주일 뒤. 우리가 선택됐다. 피드백은 이랬다. "솔직히 결과물은 다른 팀이 더 그럴싸했어요. 근데 박브랜드 팀은 우리 브랜드를 이해하려고 했어요. 그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격은 우리가 제일 비쌌다. 그래도 선택받았다. 질문 때문에. 답을 찾는 과정 질문은 방향을 잡는다. 그 방향에서 우리는 답을 만든다. 클라이언트가 "MZ세대를 타겟으로 하고 싶다"고 하면, 대부분 디자이너는 인스타그램 감성으로 간다. 파스텔톤, 산세리프, 미니멀. 나는 다시 묻는다. "MZ세대의 뭘 사로잡고 싶어요?" "그들이 지갑 여는 순간이 언제라고 보세요?" "당신이 MZ라면 이 브랜드를 쓸 이유가 뭐예요?" 질문을 파고들면 '진짜 원하는 것'이 나온다. MZ가 아니라 '가치소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거나, '나만의 취향을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식으로. 그럼 디자인이 달라진다. 파스텔이 아니라 명확한 메시지. 미니멀이 아니라 스토리. 올해 초 화장품 브랜드를 했다. 대표는 "클린뷰티"를 원했다. 시장조사 해보니 클린뷰티 브랜드가 이미 87개. "왜 클린뷰티예요?" "요즘 트렌드잖아요." "그럼 88번째 클린뷰티가 되고 싶으신 거예요?" 대표가 말을 멈췄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왜 화장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처음 생각은?" 대표는 아토피가 있었다. 20대 내내 화장을 못 했다. 30대에 피부과 치료 받고 나아졌는데, 화장품이 너무 무서웠다고. "또 뭐 바르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 거기서 컨셉이 나왔다. '무섭지 않은 화장품'. 클린뷰티가 아니라 'Gentle Beauty'. 성분 나열이 아니라, 사용 후기 중심. "3일째 써도 괜찮았어요"라는 리얼 보이스. 패키지도 투명하게 해서 내용물이 보이게. "숨긴 게 없다"는 메시지. 론칭 3개월 만에 재구매율 68%. 클린뷰티로 갔으면 그냥 묻혔을 거다. 클라이언트를 교육하는 질문 좋은 질문은 클라이언트를 바꾼다. 브랜드를 다르게 보게 만든다. "경쟁사가 누구예요?" 라고 물으면 대부분 같은 업종을 말한다. 카페면 카페, 의류면 의류. 나는 다르게 묻는다. "고객이 당신한테 쓸 돈을, 어디에 쓸 수도 있을까요?" 카페라면? 편의점 커피, 집에서 내리는 커피, 아예 안 마시고 주스. 진짜 경쟁자는 같은 카페가 아니다. '그 시간을 보내는 다른 방법들'이다. 이 질문 하나로 브랜드 전략이 바뀐다. 커피 맛 경쟁이 아니라,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공간이 되는 것. 인테리어가 중요해지고, 콘셉트가 명확해진다. 작년에 북카페 브랜딩 했다. 대표는 "조용하고 아늑한 공간"을 원했다. 근데 물어봤다. "사람들이 여기서 뭘 얻어가길 바라요?" "...책을 읽는 거 아닌가요?" "집에서도 읽을 수 있는데, 왜 여기 와야 해요?" 대표가 한참 생각하더니 말했다. "혼자만의 시간이요. 집에선 계속 뭔가 해야 하잖아요. 여기선 그냥 멍때려도 되는." 컨셉이 나왔다.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곳'. 메뉴는 최소화. 주문도 키오스크로. 직원이 말 걸지 않음. 심지어 브랜드 네임도 '...'(점 세 개). 말줄임표. 오픈하고 SNS 난리 났다. "여기 진짜 아무도 안 건드려줌." 그게 차별화였다. 질문이 없었으면? 그냥 "조용한 북카페" 100호점 됐을 거다. 질문이 만드는 신뢰 첫 미팅에서 말 많이 하는 디자이너는 불안해 보인다. 실력을 증명하려고 애쓰는 느낌. 질문하는 디자이너는 여유로워 보인다. "나는 당신의 브랜드를 이해할 시간이 있다"는 메시지. 클라이언트는 그걸 느낀다. 누가 진짜 파트너인지. 지난 6월에 미팅 하나가 기억난다. 리빙 브랜드. 창업자는 20대 후반 여성. 첫 사업이라 긴장한 게 보였다. 30분 동안 우리 포트폴리오 보여줬는데, 계속 "네네" 하면서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서 멈췄다. "혹시 궁금한 거 있어요?" "아... 아니요. 다 좋은 것 같아요." "진짜요? 불안한 거 없어요?" 그때 대표가 처음 제대로 말했다. "솔직히... 제 브랜드가 될까 걱정이에요. 포트폴리오 보니까 다 세련된데, 제 브랜드는 좀 투박하거든요." 거기서부터 진짜 대화가 시작됐다. 세련됨이 아니라 진정성. 투박함이 아니라 손맛. 그런 이야기들. 결국 그 대표는 우리를 선택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다른 에이전시는 "트렌디하게 만들어드릴게요"라고 했대. 우리는 "당신의 브랜드를 찾아드릴게요"라고 했고. 프로젝트는 5개월 걸렸다. 중간에 방향 회의만 여섯 번. 힘들었다. 근데 론칭하고 대표가 문자 보냈다. "이게 제 브랜드 맞아요. 고마워요." 그게 우리 일이다. 클라이언트 안에 있는 브랜드를 끄집어내는 것. 질문 없이는 불가능하다. 말하지 않는 용기 요즘 후배들한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미팅에서 말 좀 줄여." 다들 잘하고 싶어서 말을 많이 한다. 레퍼런스 준비하고, 시장조사하고, 트렌드 분석하고. 그걸 다 보여주고 싶어한다. 근데 첫 미팅은 시험이 아니다. 관계의 시작이다. 관계는 듣기에서 시작한다. "당신이 중요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거. 말이 아니라 태도로. 이번 달 초 미팅에서도 느꼈다. 식음료 프랜차이즈 브랜딩. 팀 막내가 30분짜리 PT 준비해왔다. 시장 분석, 경쟁사 리서치, 컨셉 방향 3가지. 발표 5분 만에 끊었다. "죄송한데, 질문부터 해도 될까요?" 막내는 당황했지만, 클라이언트는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관심 생긴 거다. "왜 프랜차이즈를 하려고 해요?" "어떤 점주를 만나고 싶어요?" "10호점이 아니라 100호점을 상상하면, 뭐가 보여요?" 1시간 동안 대화했다. 준비한 PT는 10분도 안 썼다. 근데 미팅 끝나고 클라이언트가 말했다. "다음 미팅 때 계약서 가져올게요." 그 자리에서 결정났다. 막내는 나중에 물었다. "준비한 거 왜 안 썼어요?" 답했다. "필요 없었으니까. 클라이언트가 이미 다 말했잖아." 준비는 중요하다. 근데 준비를 다 보여주는 게 중요한 건 아니다. 준비는 질문을 위한 거다. 제대로 된 질문을 던지기 위해. 9년 차에 깨달은 것 경력이 쌓일수록 말이 줄어든다. 신기하게. 신입 때는 1시간 미팅에서 40분을 내가 말했다. 5년 차엔 반반. 지금은 15분 말하고 45분 듣는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다. 실력이 생겨서 그렇다. 브랜드의 본질이 어디 있는지 아니까. 디자이너 머릿속이 아니라, 클라이언트 안에. 우리는 아티스트가 아니다. 브랜드 닥터에 가깝다. 환자 말 안 듣고 처방하는 의사는 돌팔이다. 우리도 마찬가지. 작년에 대형 프로젝트 하나를 놓쳤다. 경쟁 PT에서 떨어졌다. 이유를 물어봤더니 "너무 질문만 하셔서..." 라고 했다. 처음엔 억울했다. 제대로 하려고 했는데. 근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해됐다. 그 클라이언트는 질문을 원한 게 아니었다. 화려한 결과물을 원했던 거다. 그런 클라이언트랑은 안 맞는다. 3개월 후 들어보니 그 프로젝트 수정만 15차 들어갔다고. 결국 처음 제안한 거랑 완전히 달라졌대. 우리 방식이 맞는 클라이언트가 있다. 브랜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사람들. 그들은 질문을 좋아한다. 같이 고민하고 싶어하니까. 프로젝트 선택도 그렇게 한다. 첫 미팅에서 우리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는 클라이언트. 그런 분들하고만 일한다. 그래야 좋은 브랜드가 나온다.첫 미팅은 시험이 아니라 대화다. 말이 아니라 질문으로. 거기서 브랜드가 시작된다. 클라이언트 안에 이미 답이 있다. 우리는 그걸 듣기만 하면 된다. 말하고 싶은 걸 참는 게 디자이너의 진짜 실력이다.